일만달란트 탕감받은 사람이 가진 마음은 몇백데나리온을 받아내서 생활비로 쓰려던게 아니라,
자기가 일만달란트 탕감받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여전히 마음 속의 부채의식때문에
몇백 데나리온으로 그것을 갚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용납은 나에게 없는 관용과 이해심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구나. 내가 타인을 용납할 인격적 상태에 머물지 못한 차원이 아니라, 십자가의 용서를 완벽하게 믿지못하고, 뭔지모를 죄책감을 은근슬쩍 즐기며 내가 할 일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구나.
정말 답없는 인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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