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하나님께 세 번 구했던 것. 자신의 몸에 가시를 제거해 달라는 기도에 대해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며, 네가 약한데서 곧 온전해진다고 대답하셨다.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이 강함 되신다는 이 말씀 만큼, 인생이라는 시간을 지나는 순례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힘이 되는 말씀이 또 있을까.
그러나 문제는 이 말씀에 대한 우리의 오해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그 오해는 우리가 '믿음좋은' 그리스도인 임을 반증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는 잘 차려입은 무시무시한 말을 무책임하게 내뱉기도 한다.
지난 4일동안 이 말씀을 주제로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나도 '본능적'으로 말씀을 곡해하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아마 그런식의 오해가 내가 알고 있는 성경 그리고 하나님과 다르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그러한 오해를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에겐 강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칠 줄 모르고 확대되어만 가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나는 너무 작은 존재니까.
약할 때 강함되신다는 관용구를, 내가 약하면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서 결과적으로는 내가 강해진다는 일련의 과정으로 만들어놓고, 하나님 저는 약하니까 저에게 힘을 주셔서 강한 하나님의 멋진 성공을 보여주세요 식으로 하나님을 '이용'해 왔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아니 교회에 다니는 종교인들에게 이 말은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실패를 보듬어 다음 성공을 기약하기에 더 없이 좋은 말로 사용되어 왔던 것이다.
우리가정에게 중요한 시기라 생각되는 요즘, 이 말씀을 묵상하고 곱씹어 오해를 해소할 기회가 없었다면, 아마 많은 세월을 낭비하지 않았을까? 나의 능력치를 최대로 키우기위해, 연약함을 무기삼아 성공을 담보받는 그런식의 신앙과 삶의 태도로 헛발질만 하다 지치는 인생말이다. 겉보기엔 요란하지만, 하나님으로 채워진 내용과 방향없는 인생, 그것만큼 낭비가 어디있겠나.
김은 나에게 과정에 대한 자기검열은 이제 그만 멈추고, 하나님의 선한 결과를 의지해보라 권했다. 난 하나님이 주시는 결과가 뭔지 와닿지 않았었다. 이제 조금 더 하나님의 선한 결과에 대해 명확해졌다.
아직 그렇게 살아본적이 없다. 하나님의 지혜로 무언가를 해보고, 나의 약함 때문에 하나님이 오시는게 아니라 나의 약함 자체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 말이다. 기대된다.
'갸우뚱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셈법 (0) | 2014.04.17 |
---|---|
용납 (0) | 2014.04.02 |
un contenant/un contenu (0) | 2014.02.14 |
엘리야의 낙심 혹은 불평 (0) | 2014.02.02 |
Joyeux Noël (0) | 2013.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