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para-screen

악의 평범성(banalité), Hannah Arendt 를 가로질러

유산균발효중 2014. 1. 11. 09:39





한 개인의 행동은 언제나 전체라는 맥락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한나아렌트의 생각은 혹자들의 비판과 같이 악이라는 행위를 개인의 의지나 자율성과 떨어뜨려 놓는다는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아이히만에게서 찾아낸 증거들은 유대인인 그녀에게 약간의 위안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읽는 이들에게도 무엇인지 모를 안도감을 준다. 그런 괴물의 존재를 인정하기 싫은,  악이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닌 단순한 결핍으로 보려는 시도. 조금 더 인간적이나, 조금은 빗나간듯한 시도.그렇다고 그녀가 용서를 운운한다거나 관용을 운운하는 순박한 철학자는 아님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었던 시절의 나도 그랬다. '생각없음'을 경계하며, 수동성을 경계하라는. 사유없음이 오늘날 문명의 위기를 가져왔으며, 비판이 결여된 자동적인 명령수행이 역사를 퇴보하게 만든다는 말에 경도되었더랬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었던게 대학원에 들어가기도 전이었으니 한 2007년이전이었다면, 5-6년이 지난 지금의 내가 아렌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좀 더 객관적으로 변한 것 같다. 자신의 역사와 조국, 개인사를 휘감은 그녀의 성찰들이 어쩌면 이러한 보고서를 가능하게 했으리라. (이렇게 쓰고보니 개인의 행동이 사회적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는 그녀의 큰 전제를 옹호해버리게 되었구나) 그리고  이 영화가 즉각적으로 떠오르게 한 우리의 역사도, 그 역사 안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유대인지도자의 역할을 했던 자들, 아이히만 노릇을 했던 자들, 그리고 히틀러와 그의 후예들을 곱씹어 보았다. 

잠이 안오는 밤이다. 


* 영화와 관련하여, 하이데거와의 아렌트의 관계가 중간중간 들어간 편집이 흥미로웠으며, 실제 재판 장면을 다큐필름으로 삽입한 점도 몰입에 도움이 되었다. 아렌트를 연기한 독일의 이 배우는 당연히 아렌트의 카리스마를 따라갈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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