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시절, 일주일에 한번은 하교 후 집에 도착하면 늘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었다.
엄마는 동네 아이들을 집으로 모아, 새소식반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전도도 하고 말씀을 가르치셨다. 각종 교구(?) 만들기 그리기, 피아노 치기는 동생과 나의 몫!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평소엔 그리 적극적이지도 않은 성격이었던 엄만 그 시간 만큼은 에너지 만땅이었다. 그렇게 교회에 불신자 아이들을 전도하셨다. 그리고 지금도 엄만 아주 작은 개척교회에서 교회에 처음 오는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신다.
몇년 전 어떤 부서를 섬길지 고민하다가, 한번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유치부를 지원했는데, 오랜 선교단체 생활과 대학부의 리더, 머리쓰는 공부만 일주일 내내 하다보니 머리 굵은 어른들과 하는 이성적인 대화들이 지겨웠다. 그냥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나, 얘네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사나. 어쩌면 단순하고 이기적인 호기심에서 시작된 결정은 내 본성과는 다른 주일학교 아이들과의 만남을 몇년 동안이나 지속시켰다.
그러다 이곳에 와서 만난 주일학교는 담당 교역자는 물론 없고, 주일학교를 경험해보지 못한 팔할의 선생님들과, 약 10년 터울까지의 아이들을 데리고. 성경학교는 2년 전 쯤부터 시작한 곳이다. 그나마 이 도시의 교회들 중 성경학교를 정기적으로 하는 교회도 손에 꼽을정도란다.
이곳과 한국에서 주일학교의 의미는 형식적으로도 그렇지만, 나에게 개인적으로도 많이 다른 것 같다. 누군가 차려놓은 밥상에 숫가락 얹기만 하던 김과 나는 졸지에 여름 성경학교 유경험자이며, 여름 바캉스에도 한국에 돌아가지 않는 유일한 선생님이 되어, 성경학교를 준비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여름을 보내며, 바람빠진 풍선마냥 영적으로 축 늘어져, 우리를 왜 굳이 이런곳에 두시나 툴툴댔다. 3월즈음에 했던 ㅅㅎㅇ목사님의 설교가 성경학교의 주제와 우연히도 일치했다. 우리가 주인으로 고백하지 않는 주님을 빌라도의 입을 통해 '왕'이라고 계속해서 말하도록 한 사도요한의 의도와 여전히 나의 맘에도 백프로 와닿지 않는 그 말씀을 거리낌없이 전하려는 나의 발걸음에 제동을 거는 그분의 의중을 물으며 마음을 다듬어 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