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긴 글을 쓰는게 어렵다. 긴 호흡을 유지하며 하나의 주제를 정리해 나갈만한 마음의 여유와 육체적 에너지가 없다. 이곳을 가끔 남는 시간에 기억을 유지하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는게 고작이다. 그 어느 때보다 이질적인, 새로운 환경들을 많이도 접하고 있는데, 막상 그 환경에 대해 여유롭게 해석해 나가기 보단, 잽싸게 빠져나가는 중인것 같다.
긴 호흡과 관련해서,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기도에 관하여.
오랜 시간동안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나의 기도생활을 환기해보고자 최근 새로운 방법으로 기도하고 있다. 새로운 방법이라기 보다는 기존의 기도에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인데, 예수원에서 했던 침묵기도와 비슷하다. 중세 수도사들로부터 전해져 온 기도 방법인데, 아주 오래전 교양 음악시간에 들었던 그레고리안 찬트를 배경음악으로 쓴다. 키리에로 시작하는 그 음악. 이 기도를 하면서 머리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를 묵상하고 경험하기에 좋다. 이 기도를 해보면 알 수 있다. 나의 생각과 호흡이 사용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말이다. 과도하게 힘을 꽉 주고, 긴장을 꽉 하고 있는 온 몸에 힘을 빼고-그냥 그렇게 기다려본다.
Kyrie Eleison,의미를 모르는 이 한 구절이 몸에 힘이 빠지지 않는 이 순간만큼은 아주 정확히 이해된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여기서 살아남는 길은 초조함과 조급함에서 벗어나는 일 뿐. 이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그 '조급함'마저 버려야 한다는 것. 요즘 아침시간에 호흡기도를 연습하며 깨닫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