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구처럼 길가에 내던져, 발끝에 채일만큼 많이 사용하는' 하나님의 열심' 이란 말을 오늘 이사야 본문에서 마주했다.
과연 하나님이 열심을 내실 때는 언제일까. 늘 나의 부족과 필요를 채우기위해 기도할 때만 아멘하는 이 본문에서 과연 그 분은 또 다른 차원을 펼쳐보이신다.
이 웅장한 스펙터클의 뒷 편에서,
하나님의 주특기,
그의 백성과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그가 태초로부터 계획해두셨던 모든 일을 이루시고, (26절) 그의 구원을 이루어내시는 (32절) 그 분의 특기가 발휘된다. 비록 그 백성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수치를 당하여 들의 풀 같이, 푸른 나물 같이, 지붕의 풀 같이, 자라지 못한 곡초 같이 되었" (27절) 다 할지라도 그는 자신의 '열심'대로 그 일을 이루신다.
하나님의 열심은 나의 목적을 성취하기위한 동력이 아니다. 나의 무능함을 위무하려는 회피의 도구도 아니다. 그냥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난 나야' 를 흘려보내는 분이다. 그 지붕의 풀도 자라지못한 곡초도 그분의 열심에 의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 그 뿐이다.
문자적으로다가, 바보가 된 나의 요즘 일상을 탈피하기위해 근근히 읽어내려가는 이사야 본문에서 하나님은 줄기차게도, 내가 도망쳐버리려는 바로 그 지점을 꼬집어내신다.
내 자존심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가져다 쓰려는 욕망과 모든 어려움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려는 유혹, 그리고 난 잡초같아서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 내버려두라는 배째기! 이 모든 것을 드러내 단칼에 베어버리신다.
그분은 그런분이다.
그래서 산헤립처럼 까불면 죽는다는 의미심장한 결론!
과연 하나님이 열심을 내실 때는 언제일까. 늘 나의 부족과 필요를 채우기위해 기도할 때만 아멘하는 이 본문에서 과연 그 분은 또 다른 차원을 펼쳐보이신다.
이 웅장한 스펙터클의 뒷 편에서,
하나님의 주특기,
그의 백성과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그가 태초로부터 계획해두셨던 모든 일을 이루시고, (26절) 그의 구원을 이루어내시는 (32절) 그 분의 특기가 발휘된다. 비록 그 백성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수치를 당하여 들의 풀 같이, 푸른 나물 같이, 지붕의 풀 같이, 자라지 못한 곡초 같이 되었" (27절) 다 할지라도 그는 자신의 '열심'대로 그 일을 이루신다.
하나님의 열심은 나의 목적을 성취하기위한 동력이 아니다. 나의 무능함을 위무하려는 회피의 도구도 아니다. 그냥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난 나야' 를 흘려보내는 분이다. 그 지붕의 풀도 자라지못한 곡초도 그분의 열심에 의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 그 뿐이다.
문자적으로다가, 바보가 된 나의 요즘 일상을 탈피하기위해 근근히 읽어내려가는 이사야 본문에서 하나님은 줄기차게도, 내가 도망쳐버리려는 바로 그 지점을 꼬집어내신다.
내 자존심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가져다 쓰려는 욕망과 모든 어려움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려는 유혹, 그리고 난 잡초같아서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 내버려두라는 배째기! 이 모든 것을 드러내 단칼에 베어버리신다.
그분은 그런분이다.
그래서 산헤립처럼 까불면 죽는다는 의미심장한 결론!
'갸우뚱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울의 기도 (0) | 2013.07.06 |
---|---|
장부가 된다는 것 (이사야 46: 8-9) (0) | 2013.06.07 |
베드로의 행보 (0) | 2013.04.29 |
줌아웃 (0) | 2013.04.16 |
찾는 이의 자세-서칭 포 슈가맨에 부쳐 (0) | 2013.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