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2

잘근잘근

유산균발효중 2013. 6. 21. 05:06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한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여전히 여기에만 숨어서 궁시렁대고 있는 내가 초라했다. 

낮에 만난 그 분과의 대화, 이곳에서 유일하게 우리의 삶을 파고들고 싶어하는 진심어린 그 분과 이야기하면서도 나는 아직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이 많았다. 더 강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해도 되었을텐데, 아마 우리보다 우리를 더 걱정하는, 심약하고 늘 음모론과 문제확대 경향이 있는 그 분에게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 아마 사실이 아닐지도 모를 그 생각이 나의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만난 그녀의 글과 일상이 딱 내맘 같았다. 20대의 후반을 죽어가는 아버지 곁에서 병간호를 하며 생기없는 나날을 보냈고, 서른에 결혼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너무 빨리 결혼한다는 말을 들었다 했다. 자신의 삶과 교회의 가르침 사이의 괴리를 주체할 수 없어 교회를 뛰쳐나왔고, 채식주의자인 남편이 롯데리아 아이스크림 5개를 앉은 자리에서 흡입하는 모습에 진저리를 쳤다. 동물과 환경을 보호하며 자연과 가까이 살기위해 채식을 한다는 사람이 어떻게 콜라와 아이스크림을 사랑할 수 있는지 그 간극을 이해할 수 없다는 그녀의 말.

내장 벽에 붙어있던 온갖 찌꺼기들이 다 긁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도 지금의 누추한 삶을 가볍고 상쾌하고 재밌게~그리고 쿨하게 쓰고 싶은데, 그럴만한 유전자가 나에게는 결핍되어 있나보다. 그래서 그녀가 써 놓은 글을 읽었을 때, 배꼽이 쏙 빠지게 웃어댔다. 아마 그 정도로 웃긴 것은 아니었을텐데, 그녀가 쓰는 반어법과 욕이 부러웠다.  

현실의 비루함을 천상의 언어로 표현하려는 내가 싫어서.  

그리고 깊은 밤, 김이 바꿔준 그 전화에서,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왜 괜찮지 않는 우리의 상황을 괜찮고 좋고 행복한 척 "도레미파"의 톤으로 말해야하는지 갑자기 화가 났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불만이 아니고, 나 자신에 대한 불만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대하는 방식, 더 정확히 말해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에게 얼마나 방어적이며 경계태세를 취하는 가를 확인하게 된 순간, 여전히 1cm도 자라지 못한 나를 향한 비난이었다. 아니면 내가 말하기 전에 나를 이해해 달라는 말도 안되는 억지이거나. 


그렇게 마음을 해집어 놓은 진흙탕이 모두 가라앉고 나서야, 삶의 방식에 관한+ 믿음에 관한 + 교회에 관한 나의 고민과 불만이 응축된 발악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 좌표를 확인해본다. 이제까지는 더 정확하고 섬세하고 확실한 영점 조정이 중요했다면, 이제부터는 실제로 내가 걸어가고 있는 중인가를 따져볼 때이다. 말 만 삐까뻔쩍하지는 않은지. 보기에만 그럴듯한 것은 아닌지. 

나에게 없는 유전자 누가 조금만 나눠주면 좋겠다. 는 불만투성이 비극적 어조로 끝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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