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2

chez moi

유산균발효중 2013. 2. 22. 07:41

유럽의 경기니 파리의 노숙자니 하는 말들을 귓등으로 들었었는데, 집구하기 3주차, 이제서야 조금 실감이 난다. 

한국에서 미리 집을 구해서 오거나, 여기 와서 몇개월씩 전전긍긍한다는 말을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집은 구해지기 마련이란 말도 들었다. 6개월동안 집없이 지내다가 몽마르트에 올라가 울었단 말도 들었다. 아랍사람들과는 거래하지 말아야하며, 너무 좁은 집에 살면 부부가 계속 싸우게 되며, 집주인을 잘 만나야하며 어느동네는 안되고 어느동네는 비싸고, 가구는 어떻고,방리유가 어떻고 시내가 어떻고 란 말도 들었다. 저마다 한마디씩 조언을 해 주었다. 고마웠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미 이런저런 정보가 과잉이었다. 

어딘가에 우리집을 마련해놓으셨을거란 막연한 기대+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는 일상과 모든것에 새롭게 적응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민박집에 있는 분들도 모두 좋긴 하지만 방에 갇혀있는 기분인걸 어쩌겠는가.

부동산 비용을 아끼려고 주인과의 직거래 사이트를 통해 몇몇 집을 돌아보았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자 둘다 학생이라는 최악의 조건을 가졌단 생각에 위축되었다. 집세는 어떻게 낼래? 이런저런 서류 내라. 둘다 학생이면 보증인이 두명 있든지 은행보증을 1년해라. 처음엔 이해 안되는 제도들이었지만, 이곳의 문화이며 집주인들도 위험을 감수하고 있단 생각에 그냥 문화려니 한다. 보러 오라고 하는 몇몇 집들에 갔을때 사람들이 길게 줄을 쭉 늘어서 있었다. 뭔가 했더니 모두 집보러 온 세입자들이었다. 자신들의 신분과 수입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가지고! 차례차례 들어가서 마치 면접을 보는 것 처럼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에 대답한다. 아무것도 몰랐던 처음에는 마치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얼마후에 아니란 것을 알았다. 

애초의 계획이었던 블로뉴보다는 파리 시내가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들도 많고 집세도 얼마 차이나지 않는다면 시간이 돈이란 생각에서 였다. 돈을 아끼려고 좁은 집에 들어가려던 계획도 수정했다. 장기적으로 있기를 소망하고 기대하며 조금 더 넓은 집을 정하기로 했다. 6,7구에는 천유로 이상의 집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14구 15구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열심히 찾아야지 맘은 먹었지만 쉽지 않았다. 

pap에서 몇번 허탕을 치고 연락도 안오니 의욕이 상실됐고, 길가의 부동산들은 매물이 없을 뿐 아니라 우리같은 학생들을 고객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았다. 프랑스 존에 나온 집들은 시세보다 비싸거나 정상적이지 않은 거래들이 있었다. 부동산비를 아끼려던 애초의 계획도 수정했다. 

생각해보니 우리의 모든 계획은 돈을 아끼려는 것에 맞추어져 있었다. 파리의 살인적인 집세에 어느 새 익숙해져 현실감각이 없어진걸까 아님 담대해진걸까. 이왕 없는 것, 더 용감해져야겠다 생각했다. 

김도 나도 지칠대로 지친 오늘, 며칠째 서로 툴툴대는 대화만 오간다. 눈을 맞추며 즐거운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다.우리의 한계이다. 금요일 수업이 끝난 오후 5시, 김이 며칠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로 말한다. 어제 오전에 내가 보고 왔던 고블린의 집 주인이 우리랑 계약하기로 했단다. 나혼자 보고 온 집이라 긴가민가 했는데, 그날 봤던 몇 팀이 모두 계약하고 싶어했는데, 주인은 우리가 커플이라 월세를 잘 낼거 같아서 선택했단다. 보증도 확실하고. 그래 역시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어. 

우리가 생각했던 조건들.

중앙난방/안전하고 조용한 동네이며/학교에서 멀지 않은곳/예산과 크기/햇볕이 잘 들것/2층/화장실과 주방 분리/정사각형 이 맞았다. 게다가 로망이었던 테라스에 미니정원이 있었다. 가장 맘에 든다. 

아- 이제 또 하나의 산을 넘었다. 그집에 오래오래 살게 되길 바란다. 연락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학교에서 걸어서 그 동네 구경을 갔다. 비록 집에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동네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 왜 우린 늘, 언제나, 완벽하게도 사후적이란 말인가. 


이렇게 우리의 3주는 끝났다. 문님과 장난처럼 결혼기념일에는 새로 구한 집에서 와인한잔을 하고 있겠단 말을 했는데, 진짜 딱 3월9일에 들어가게 생겼다. 한달로 계약한 민박집 날짜도 딱 맞춰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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