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도 큰 소리로 말하던 그가 유난히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상황은 늘 생각하기 부끄럽거나 두려운 감정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며칠 전 우리집 앞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던 그 고양이 놈과 마주쳤을 때도 난 없어졌다 생각했던 고양이 공포증이 되살아나며 고함을 질렀더랬다. 부들부들 떨면서,.. 반면 놈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냉소의 눈빛을 보냈다. 큰소리는 나에게 이런 것이다. 두려움에 대한 자기 방어.
십자가에 달려,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의 그가 질렀던 큰소리.
한번도 주목하여 보지 않았던 성경의 이 부분에서 오늘 나는 얼마나 그에대해 무지했는지를 깨달았다. 혹자는 그 모든 사람들의 죄를 온 몸에 짊어져야 하는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으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고통이 그의 육체를 가득 메웠다고 해석했다. 매우 당연히 여겼으며 널리 받아들여진 그리고 매우 인본주의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죽음을 겪었던 그분에게 이 사건은 두려움이 아니라 대속과 승리였다. 그렇기에 땀이 피로 변하도록 기도하신 후의 그분은 완전한 평안과 침묵가운데 십자가를 받아들이신다. 이제까지의 그분의 꾸짖으심이 그러했듯, 십자가 위의 큰 소리도 귀신과 온 우주만물에 대한 그분의 주권을 드러내는 왕의 명령이다.
그리하여 그분의 큰소리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울부짖음이 아니라 평안과 공존하는 소리이다.
예수님에게만 존재하는 그 권위와 힘을 회복하고 싶다. 내 안에 작게 가두어두었던 십자가의 권세, 그의 안에 있을 때에만 가능한 죽음을 이긴 그 권세를 회복하고 싶다.
오랜만에 큰 소리로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