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의 노 수녀와 그녀의 오랜 친구인 노 목사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선다.
기행문이나 에세이 류의 글을 즐겨읽진 않지만 조이스 럽의 정서는 나와 참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여가 넘는 시간동안 사적인 시공간(!)이 없이, 오늘 밤에 잘 곳, 다음 끼니를 때울 음식을 고민하며 걷는 길은 많은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것처럼 낭만적이지는 않아보인다.
나누고 싶은 인상적인 통찰들이 많지만,
나에게 많은 도전을 주었던 부분은 느긋함과 고독, 성취와 경쟁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가 카미노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톰과 나는 첫주를 속도의 압박감 속에서 보낸 후 둘 다 피로가 쌓이고 풀이 죽어 있었다. 아이러니였다. 우리는 집과 업무로부터 이역만리 떨어져있었도 7주 동안 '할 일'이나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일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해방되어 느긋하게 지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에 왜 우리는 지금 다음 대피소까지 급히 서두르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부과한 이 부담감의 근원은 무엇일까?
....
우리를 추월하며 빠른 속도로 스쳐가는 순례자들 때문에 잔뜩 기가 죽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틀림없이 우리만 뒤로 처질게 뻔했다.
다른 순례자들이 서두르는 모습에서 불안이 고조되었다.
...내 속에서 날마다 점점 더 커지는 말없는 경쟁의 목소리였다.
집을 떠나온 것은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였건만 우리는 그 긴장을 모양만 바꾸어 그대로 갖고 왔다. 스트레스의 장소만 바뀌었을 뿐 기대에 짓눌려 계속 긴장하고 끙끙댔다.
성취야말로 우리 문화의 발전기반이자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문화가 우리 안에 심어준 목표가 아니던가.
느긋하게 걸어라. 하지만 말처럼 하기란 쉽지 않다. 톰과 나는 생산성을 지향하는 사람, 맡은 일은 확실히 해내는 부류였다.
단순한 쉼,
그 안에 풍성한 깊이가 있다._칸드로 린포체
__이 모든 묵상은 아빠의 병실을 지키며 이루어졌기에 나에게 더 깊이 다가왔다.
느긋하고 천천하게,
책임감과 성실함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를 음미하고,
온 우주가 말을 걸어올때, 이에 응답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부정적인 생각과 비판을 유머감각으로 바꾸어 보고, 책임감, 성실함, 성공적인 삶에 대한 조급한 욕구들이 자초한 스트레를 처리하는 연습.
그것은 비단 카미노 순례길을 걸은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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