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시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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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균발효중 2011. 9. 27. 16:50
나의 스물아홉은 왜 이리 파란만장하냐고 되물었을때, 
그는 자신이 너의 나이에 결혼하고 군대에 갔으며, 바람부는 벌판에서 선임들에게 먼지나게 맞았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껄껄껄 웃었다.
슬픔을 가장 슬픔답게 표현하는 일은 어쩌면 웃는 것 밖에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슬퍼하다 지쳐서 그냥 오묘하게 웃어 버리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몇달을 보냈다.
무언가 '열심히'해 온 지난 4-5년의 서울생활이 어울리지 않을 옷을 입은 사람이었던 것을 긍정하듯.
진정한 정화와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래서 마음속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꺼내어보는 일이었음을.
지금 당장은 효과없는 이 쉼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지혜롭다고 평가될 만하게.
그렇게 잉여로서 살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손에 쥐고 있는 자원은 너무 한정적이다. 
원래 가진 것 없이 태어났다면, 소유욕이나 부지런함, 사회적인 기지라도 있어서 빠릿빠릿 얻어냈어야 할텐데.
그것도 아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속물처럼 그런 걸 갖고 태어난 누군가를 부러워도 해보고,
그것을 이미 얻은 이들의 억척같음을 냉소해보기도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나의 진심은 아니다.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류의 믿음 좋은 척 하는 말 참 싫다.
난 너무나 이해되고 심지어 예견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감정으로까지 받아들이고 싶지않다. 
자신을 혹사시키고 싶지 않기때문에.

다만 슬퍼해야 할 때 슬퍼하고, 
웃어야 할 때 울고,
미워해야 할 때 미워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 이해하고.

-파란만장 스물아홉의 구월은 간다. 헉헉. 세달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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