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para-screen

[JIFF 2011_디지털 삼인삼색]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글

유산균발효중 2011. 5. 7. 00:56
http://blog.naver.com/sagredo/150101611861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2011 Jeonju Digital Project 2011> 참여감독의 명단이 오늘 공개되었다. 장-마리 스트라우브(Jean-Marie Straub), 클레어 드니(Claire Denis) 그리고 호세 루이스 게린(Jose Luis Guerin)이 그 주인공들이다. (페드로 코스타, 하룬 파로키, 유진 그린 감독이 참여했던) 2007년 이후 두 번째로 유럽 감독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감독들과 함께 하게 된 것이 정말 자랑스럽고 그 결과물들이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장-마리 스트라우브의 작품은 이미 완성되었다. 현재 영어자막 작업중인 이 작품은 두 개의 버전이 있다 하는데 물론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두 버전 모두가 상영될 것이다.) 

 

보도자료에 실을 요량으로 세 감독들에게 <디지털 삼인삼색>을 위해 구상하고 있는 작품의 개요와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부탁해 받았는데, 통상 그렇듯 보도자료에 실리더라도 실제 기사화되어 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 아쉬운 마음에 여기 그 전문을 소개할까 하다가 세 감독들 가운데 국내에 가장 덜 알려져 있는 호세 루이스 게린이 보내준 것들만을 옮겨 보기로 했다.  (게린 감독은 <실비아의 도시에서>와 <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 두 편의 영화를 들고 이미 2008년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실비아의 도시에서>는 동시대 가장 전투적인 방식으로 시네필리즘을 내세우고 있는 대표적 영화잡지인  <시네마 스코프 Cinema Scope>에 의해 지난 10년 간 최고의 영화 16편 가운데 하나[1]로 꼽힌 바 있다. 한편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작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첫 공개되었던 게린의 신작 <게스트 Guest>(2010)도 함께 상영될 예정이다.) 

 

호세 루이스 게린의 <1900, 이웃 이야기 1900, A Neighborhood Story>

(가제, 디지털 삼인삼색 2011)

 

[사진] 호세 루이스 게린 감독

 

시놉시스

 

우리 집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 반대편에 있는 한 오래된 건물의 정면이 보이는데, 그 건물에는 “1900”이라는 연도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이곳으로 이사한 후 10년 동안 나는 두 건물 사이에 있는 나무가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기록해 왔다. 때로는 낙엽을 통해, 때로는 벌거벗은 나뭇가지들을 통해 건너편 창문들에 어떤 움직임들이 아로새겨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처럼 나무를 통해 이웃을 관찰하는 것은 불협화음의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맞은 편 건물 창문 옆에서 집요하게 연습하던 그 이웃 바이올리니스트의 모습은 나에게 그렇게 하나의 일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2008년 1월 21일 아침, 그는 벌거벗은 채로 창문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나와 나이가 같았던 그에 대해 알게 된 단 한 가지 사실은, 최근 그가 나의 사춘기를 사로잡았던 이야기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새로이 번역하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뿐이다. 여기서 “1900”이란 해는 한 세기 - 나의 세기, 영화의 세기 - 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 세기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다.

 

연출의도

 

왜? : 나는 탐구하고 배우기 위해, 어떤 납득할 만한 설명을 얻기 위해, 그리고 내 실제 이웃에 관한 무언가를 알기 위해 카메라를 이용하고자 한다. 나에게 있어 영화는 개인적인 체험이자 앎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예단된 계획 없이 카메라를 활용하여 그 자체로 무언가가 드러나도록 할 생각이다. 나의 이웃이, 여느 이웃들처럼, 세상의 메아리를 담고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내 영화는 출발한다.

 

Q & A

 

2011년 전주국제영화제의 <디지털 삼인삼색>에 참여하게 된 소감은 어떤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어떠한 작품을 선보이기를 바라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아는 순간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구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영화는 (항상 그런 건 아니더라도) 그걸 만드는 순간에만 알 수 있는 어떤 자극을 통해 탄생한다. 적어도 내 경험에 따르자면 그렇다. 나는 큰 (사랑, 죽음, 돈, 창조, 역사 등등의) 주제들을 암시하는 보다 소소하고도 친밀한 것들에 대한 관찰을 선호한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전주국제영화제와 본인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2008년 5월 전주 영화제에서 <실비아의 도시에서>와 <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이 상영되었을 당시 초청받은 적이 있다. 전주영화제의 관객은 굉장히 주의 깊고 정중했다. 최상의 의미에서, 예의바른 시네필들이었다. 그간 <디지털 삼인삼색>에 참여한 영화감독들의 면면을 본 이후 나의 확신은 굳어졌고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어 대단히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김”이라는 성을 가진 한 소녀와의 산책을 기억한다. 그녀는 19살의 천사 같은 소녀였는데, 그녀가 알고 있던 프랑스어 네 단어로 나와 소통하기 위해 조화와 절묘한 우아함을 지닌 제스처로 손짓을 하곤 했다. 그리고 길고 집중적으로 이어졌던 인터뷰에서 나를 도와준 “비올레타”도 생각나는데 그녀는 내겐 마치 어머니와도 같은 통역사였다. 흔한 감사인사로 빠지지 않기 위해, 전주 영화제와 애정 어린 관계를 맺었었다고만 말해두겠다.

 

당신만이 추구하는 제작 스타일과 영화 철학에 대해 설명해 달라.

 

내게 영화를 만드는 것은 세상과 소통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따라서 정체성을 찾기 위한 나의 방식이다. 영화는 기나긴 여정과 같다. 이 여정에는 지름길도 별다른 뾰족한 수도 없으며 고독하고 가파른 구간들만이 존재한다. 더 편한 길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길이 나의 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가는, 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여정.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계획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면?

 

출발점으로서 하나의 이미지만을 생각해 둔 한 장편 영화의 촬영을 준비 중이다. 그 이미지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낯선 도시를 걷는 한 여자의 이미지다. 동시에 요나스 메카스와 함께 한 “영화-편지” 작업을 마무리 짓는 중이다. 이제 네 번째 “영화-편지” 교환이 이루어질 차례고 아마 4월 즈음에 끝날 것이다.


 

※ 주

 

[1] 아마 <시네마 스코프>의 이 리스트는 2009년 말에서 2010년 초에 전세계 각 영화잡지들이 발표한 "Best of the Decade" 리스트들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리스트일 것이다. 작년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자리를 함께 한 페드로 코스타, 라브 디아즈 그리고 제임스 베닝은 이 리스트를 두고 "정말이지 미치광이 같은 리스트"라며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자면, 그 모든 리스트들 가운데 동의의 여부를 떠나 (페드로 코스타의 리스트와 더불어) 가장 경탄할 만한 리스트였다고 생각한다. 그 리스트들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시네마 스코프> 선정 베스트

 

1. <플랫폼 Platform> (지아 장커, 2000)

2. <반다의 방 In Vanda's Room> (페드로 코스타, 2001)

3. <자유 La libertad> (리산드로 알론소, 2000)

4. <로스앤젤레스 자화상 Los Angeles Plays Itself> (톰 앤더슨, 2003)

5. <13개의 호수 13 Lakes> (제임스 베닝, 2004)

6. <필리핀 가족의 진화 Evolution of a Filipino Family> (라브 디아즈, 2004)

7. <하나 그리고 둘 Yi Yi> (에드워드 양, 2000)

8. <블랙 북 Black Book> (폴 버호벤, 2006)

9. <살인의 추억 Memories of Murder> (봉준호, 2003)

10. <멀홀랜드 드라이브 Mulholland Drive> (데이빗 린치, 2000)

 

특별언급 : <행진하는 청춘 Colossal Youth> (페드로 코스타, 2006), <라자레스쿠씨의 죽음 The Death of Mr. Lazarescu> (크리스티 푸이유, 2005), <실비아의 도시에서 In the City of Sylvia> (호세 루이스 게린, 2007), <침입자 L'intrus> (클레어 드니, 2004), <쓰리 타임즈 Three Times> (허우 샤오시엔, 2005), <징후와 세기Syndromes and a Century>(아피찻퐁 위라세타쿤, 2006)

 

페드로 코스타 선정 베스트

 

고(故) 다니엘 위예와 장-마리 스트라우브의 모든 영화들

<엠/아더 M/Other> (스와 노부히로, 1999)

<플랫폼> / <공공장소 In Public>(2001년 디지털 삼인삼색 작품) (지아 장커)

<오고 가며 Come and Go> (주앙 세자르 몬테이루, 2003)

장-뤽 고다르의 영화 대부분

<0번 Numero Zero> (장 외스타슈, 1971년 제작되었으나 2003년 개봉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