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적 의미의 아우슈비츠를 남용하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손톱 밑을 바늘로 찌르는 고통 정도가 책상머리에 앉은 내가 할 수 있는, 머리가 곤두서는 상상의 최대치라는 사실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인간의 모든 고통을 상징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든 노력에 대해 냉소를 보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나와 마주치는 모든 것을 아우슈비츠로 만들려는 환상적 현실인식에 대해 반대한다.
아우슈비츠보다 더 끔찍한 인간의 환상에 오해에 대해 조금은 우울해졌다.
Käthe Kollwitz보다 이 글을 잘 설명하는 그림은 없으리라.
http://www.a-r-t.com/kollwitz/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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