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para-screen

유산균발효중 2010. 6. 7. 17:17

이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리뷰와 감상은 '영화가 한편의 시같다.'는 말로 끝난다.

이런 의견에 대한 특별한 이의는 없는 편이나,

여타의 언어로는 정말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ㅇㅊㄷ의 전작들에서 그는 확실한 자기만의 기질을 어김없이 뿜어낸다.

김희라가 연기한 회장님 역할은 '오아시스'의 뇌성마비 여성(문소리)를 연상시키고,

시 동호회 사람들끼리 나누는 일상에서 축지법으로 걷는 듯 한 대화나

시를 배우고자하는 문화센터 수강생들이 이야기하는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같은 소재는 '박하사탕'의 인생론을 떠올리게 한다.

코밑이 거뭇거뭇한 손자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은 '밀양'을 떠올리게도한다.

결국 시를 한편이라도 쓰고자 하는 미자는 감독자신을 떠올리게도 한다.

거기에 김용택시인까지 출몰했으니..(허허 어색하고 구수하다.)

 

이 영화의 핵심적 장면이자 절정은 단연 미자가 엘레나의 엄마를 찾아갔을 때로 꼽고싶다.

피해자 가족을 설득하기 위해 내몰린 미자는 이미 알츠하이머가 진행되어 자신이 무엇을 하러 이곳에 왔는지 잊고 단지 그 장면을 즐기고만 돌아간다.

(난 그게 미자의 병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단지 사건의 개연성을 위한 설정이자 트릭일 뿐.)

그녀는 이렇게  점점 현실과 시의 세계의 경계를 넘어간다. 마치 비가 내려 강물과 하나로 만나 경계를 허무르며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처럼.

밭에서 일하는 엘레나의 엄마를 찾아가는 길, 툭 떨어진 살구를 한잎 베어물고 행복에 젖은 미자는 울며 용서를 빌어야할 상대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칭찬과 때가 되어 익는 과실에 대해 찬양한다. 미자의 대화를 들으며 설마설마 하던 우리는 결국 즐거운 얼굴로 그녀가 돌아설 때까지 조마조마하다가 뻥 터져버린다. (마치 밀양에서 전도연이 피아노교습소를 뛰쳐나와 길거리에 대고 소리칠 때의 기운이 극장 안을 감싼다.)

그리고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 미자는 울듯 말듯 넋나간 표정으로 버스를 기다린다.

 

 

미자에게 시는 죽은 그녀에 대한 위무이자,

자신의 남은 삶에 대한 셈하기이자,

자신의 삶에 대한 해방구이자

자신을 둘러싼 세계중 아름다움 찾아내기 위한 사투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관조라는 이름으로 덧 씌워져있다.

그러나 결국 관조될 수는 없는 고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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