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para-screen

최근 본 몇몇 영화들

유산균발효중 2018. 12. 5. 06:15

2018년에는 최근 몇 년간 따라잡지 못한 영화들을 좀 몰아보고 있다. 정기권을 끊어 다니던 때는 한국 영화와는 좀 멀어졌으나, 대충 프랑스 영화시장 분위기는 감이 왔는데, 요즘은 프랑스 극장들도 워낙 대형화되어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찾아다니지 않으면 보고싶었던 영화들을 놓치기 일쑤다. 가버나움을 꼭 극장에서 보려 했는데 생각해보니 끝나있었고, 올해는 파리의 한국 영화제에 마리, 마뉘를 불러 가려 했는데 너무 바빴고, (그 사이 마리는 공작에 감동받았더랬고). 뭐 그런 분위기. 입소문이난 (여기에서 입소문이라고 해봤자 기사들이나 흥행후 사후적인 논평들 뿐이지만) , 독립영화들을 몇개 연달아 보았다. 

살아남은 아이/ 죄많은 소녀 해결하고 싶어하는 애도의 문제는 저 멀리 파수꾼과 공명하며, 죽음과 애도 슬픔이라는 소재가 다시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마도 거대한 트라우마를 객관적으로 마주할 시간이 되었나보다. 두 영화모두 오랜동안 여운이 남았다. 죄많은 소녀는 조금씩만 덜어냈으면 하는 부분들이 보였다. 죽은 소녀의 엄마의 서사나 친구들과 주인공의 관계나. 교사와 교장 사이의 권력 구조 등등.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하고 개연성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장치들이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살아남은 아이의 담백함이 마음에 든다. 

소공녀가 보여주는 세계는 마치 82년생 김지영이 많이 읽혔듯, 마치 한국 사회에 대한 다큐멘터리 같았다. 구성과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오랜만에 아주 재미있는 영화라고 느꼈다. 그러나 내용과 캐릭터에는 오히려 잘 설득이 되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족구왕과 소공녀는 일맥상통한다. 이들을 관통하는 세계관, 소위 밀레니엄 세대의 모습을 정형화 하고 있는데, '자신의 취향과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해달라' 그렇지 않은 너는 속물이자 꼰대라고 말하는 명제가 나에겐 오히려 교조적으로 느껴졌다. 족구 하는 그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내가 대치되고, 집은 없지만 취향과 취미를 즐기는 너와 삶에 찌들어 집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내가 대치되어 서로 미끄러져버렸다.  

그리하여 요즘은 주로 독립영화들을 좀 몰아보고 있고, 

그 이전엔 한동안 스파이 관련 영화들을 좀 몰아봤다. 존 르 카레를 만나는 바람에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을 좀 섭렵했다. 스파이 장르의 반전이나 흥미진진 볼거리를 기대한다면 그 기대에 부응하지는 못하겠지만 인물들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폭풍같은 흐름에 주목하게 된다. 본 시리즈와 비슷하게도 스파이의 '정체성'이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파고든다거나, 정치적 구조와 집단 내에서 이용당하는 인물들을 중심에 둔다. 르 카레의 인물들을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으나, 그럼에도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예술계와 미술 등에 관련된 영화들은 꼭 보려고 하는 편인데, 스퀘어 라는 영화는 여러가지 면에서 놀라운 발견이었다. 일단 형식과 내용의 일치가 이 영화의 미덕이라 하겠고, 영화에서 다루는 현대미술과 영화의 형식과 내러티브의 비선형적인 흐름이 이렇게 저렇게 직조되어 블랙코미디를 만든다.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헤프닝들이 실재 일어나고 있다. 가장 우아하고 그럴듯한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대변하는 인물을 아주 잘 만들어 놓아, 보는 내내 헛웃음이 났다. 참고로 시종일관 인물들은 세상에서 가장 진지하다. 쩝. 

한국 상업영화 몇 편을 보았다. 공작은 만듬새가 좋았고. 강철비는 이야기가 좋았고, 

아이캔스피크의 경쾌함과 태도가 좋았고 (상업영화라 할 수 있나?) 여배우는 오늘도의 문소리가 좋고, 당신의 부탁의 임수정의 시끄럽지 않음이 좋다. 

버닝을 보고 나는 이창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형임을 깨달았다. 

서치의 재기 발랄함에 감동했다. 

결론적으로는 제때 제떄 영화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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