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2

그들의 바캉스

유산균발효중 2015. 8. 17. 15:05

샤모니 근처 작은 마을에 잡은 숙소는, 우리로 치면 휴양림정도의 분위기인데, 통나무로 몇동을 만들어 이름을 붙여 놓고 겨울이면 스키어들이 여름이면 긴 방학과 휴가를 보내는 가족들이 머무는 전형적 휴양지였다.4-5개의 동이 있는데, 주차장이 거의 꽉 찬 걸로 보아,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는가보다. 첩첩산중에 호수도 있고 트레킹 코스도 많고, 산악자전거를 빌려주는 가게도 있다. 큰 마트는 물론이고, 잔디로 된 축구장과 빵집, 카페는 기본. 

덩치 큰 가족 단위로 움직이는게 처음이라 좁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복층구조의 숙소는 충분히 넓었고, 요리를 하기에도 최적의 기구들을 갖추고 있어 기분좋게 짐을 풀었다. 벨기에 사람이라는 주인은 아내의 고향인 상하이에서 바캉스를 보내고 있었으며, 우리의 도착을 알렸던 저녁시간에 그곳은 해가 뜨고 있으니 즐거운 시간 보내라는 친절한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기간에 운이 좋게도 이 마을에서 주최하는 축제의 일환으로 호수에서 펼쳐지는 (옛날식)불꽃놀이도 감상했다. 어린시절, 아파트 현관이나 옥상 쯤에서 보았던 시청의 불꽃놀이랑 다를바 없었지만, 매우 가까운 거리였던데다가 호수를 배경으로 터지는 불꽃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몽블랑에 올라가보는 것이 메인 일정이었지만, 이 호수에서 좀 더 머물고 싶었다. 파리 동네 주차장이 텅텅비고, 거리에선 좀처럼 불어를 들을 수 없더니만, 다들 여기와 있었네. 깨끗하지 않은 호수물에 다들 몸을 담그고. 나무에 연결해 둔 줄로 마치 유격훈련같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보니, 이들의 바캉스 문화가 한눈에 보인다. 그냥 동네 공원에서 노는 것처럼 누워서 책보고 멍하니 있고, 가족들끼리 수다를 떨고. 조금은 비 현실적여 보이는 광경이었다. 

옆 집에 머무는 할머니는 짐을 들고 올라오는 우리에게 반색을 하며, 프랑스 할머니 특유의 썰을 풀기 시작하신다. 알고보니 파리에 사는 은퇴한 할머니로, 여기 집을 산지 10년이 넘었고 휴가때마다 와서 한두달씩 지낸단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자기에게 다 물어보라며, 한참동안이나 서서 이야기를 하시는데, 왠지 혼자 오래 지낸 사람의 포스가 느껴진다. 한두달의 휴가와 자기가 소유한 이런 집이 있다는게 여유롭지만 쓸쓸하게 보였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돌아오는길에 다시 만난 그 할머니는 낮과는 사뭇다른 차림새로 나에게 말을 건냈다. 화장도 조금 하신것 같고, 악세사리도 커다랗다. 그 모습이 왠지 더 쓸쓸해보여, 오버하며 대화를 나눈다.그리고 며칠동안 몇번이나 김과 그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의 바캉스를 이렇게 구경해보다. 

 

 


'속좁은 일상_2' 카테고리의 다른 글

2막  (0) 2015.08.20
버킷리스트?  (0) 2015.08.20
반가운, 독서  (0) 2015.08.09
점령!  (0) 2015.07.28
파리 플라쥬  (0) 2015.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