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2

테러, 그 후

유산균발효중 2015. 1. 20. 06:53

#1.오늘 저녁 뉴스를 보는데, 첫번째 기사로 나온 것이 테러 영웅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것이었다. 그 영웅은 누구냐면, 방센에 인질로 잡혀있던 사람들을 창고 냉장고에 숨겨준 유대인 가게의 종업원, 24세 흑인 남자 무슬림 청년이다. 마뉴엘 발스는 명예훈장을 수여하기에 앞서 그는 진정한 프랑스 인이며 그의 영웅적 행위에 감사한다는 연설을 했다. 재차 그는 자랑스런 <프랑스 인>임을 여러번 강조해 주신다. 허헛

#2. 테러가 난 날, 같은 시각에 나는 파리식물원에서 미테랑 도서관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유난히 안개가 많은 낮에 사진을 찍었다. 도서관에 있는 내내 몰랐는데, 저녁에 집에 와서야 뉴스를 들었다. 그리고 새벽까지 상황을 확인하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 그날은 수요일이었고, 헤퓌블릭 광장에 모인 수많은 인파들에 대한 보도사진도 보였다. 거리가 조용했던 이유도 그제야 알았다. 그리고 목요일 정오엔 학교 입구앞에서 모두들 1분간의 묵념을 한 후 수업에 들어갔고, 금요일엔 또 다시 벌어진 인질극에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여기저기서 경찰차 소리도 들리고, 학교에 갈때는 학생증 검사와 가방검사를 하고, 지하철에 두세명씩 서있는 경찰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일요일에 거대하게 열린 집회에 사람들은 우르르 모여서 갔다. 사람들의 행렬이 끝이 없었다. 하지만 외국인, 그것도 아시아계의 우리가 낄 자리는 없다는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은 한글학교의 청소년들도 같았다. 

#3. 샤를리 엡도는 나만 처음들은 신문은 아니었다. 아니 신문이라기보다 풍자만화 컷들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키치적느낌의 주간지인데, 프랑스 애들도 이번사건으로 인해 알게되었다고 하니 그리 독자층이 두터운 편은 아니었나보다. 그도 그럴것이 당사자가 된다면 꽤나 당황스러울만한 풍자가 들어가 있고, 너무나 자유로와서 어머 망측해라를 외칠지 모른다. 실제로 우리동네 키오스크에서 재발간된 샤를리 엡도를 보고 감정적으로 느낀 반응은 딱 그것이었다. 딴지일보는 너무 점잖다 ㅎㅎㅎ 

#4.  그리고 이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프랑스 내부에서 이어지는 담론들과 봉합과정들은 아마도 미국의 9,11테러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 

처음에 이방인의 눈으로는 감정과잉이나 선동이 아닌 이들의 구호가 성숙하게 보였고. 테러리스트들과 대다수의 이슬람을 혼동하지 말자는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하지만 동시에 마린르펜과 사르코지가 올랑드보다 더 자주 텔레비전에 보인다. 역시나 민족주의의 구호를 이끌고.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마침 테러가 있던 다음 주초, 우린 베를린에 있었는데, 베를린에서도 대규모 반이슬람 집회가 열렸다.나치 정당의 역사를 이어받은 독일의 극우정당이 최근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항하는 반-반이슬람 집회가 이보다 4배많은 인파와 메르켈의 지지 속에 이뤄졌다. 나치의 역사를 가진 이들이 인종과 종교문제에 얼마나 예민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지 볼 수 있었다. 

#5. 두 테러리스트가 프랑스에서 교육받고 자란 고아원 출신의 형제여서, 나름 내부의 지성인들에게서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6.  하지만, 오늘 저녁뉴스에서 보았던 명예 표창(?) 수여식은 정말 보는 외국인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안하는게 좋아보였을 정도로. 유대인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그 착하고 순하게 생긴 청년은 양복을 입고 미리 써온 소감문을 읽었는데 자신은 영웅이 아니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의 목소리와 배경화면이 엄청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워보였다. 마치 평범한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어 더이상 소박한 행복의 가치를 모르게되는 그런 비극적인 상황이 떠오른 건 왜일까? 그의 가족들과 지인들이 초대되어 파티도 벌어졌는데, 인터뷰에는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등장해 그의 영웅적 행위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 

#7. 희생자에 대한 오마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순박한 사람들의 옹호 모두 좋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명을 없애는 야만적 행위는 없어져야 한다는 굳은 의지도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여전히 자행하고 있는 수많은 전쟁에 대한 묵인과 혹은 지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모두 프랑스 인이라고 말하면서 저지르는 암묵적인 종교 인종차별을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테러리스트2명도 프랑스인이었고, 인질들을 안전하게 숨겨준 그 청년도 프랑스인 이었는데, 부끄러운 프랑스인은 없고 자랑스런 프랑스인만 있는 이 화면은 참으로 불편하다. 영웅적인 행위를 한 그 청년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세레모니는 이런 상황에서 너무 초보적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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