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우뚱 묵상

엘리후, 욥의 고통에 관한 한 젊은이의 주장

유산균발효중 2014. 8. 25. 07:56

La solidité du brouillard, Luigi Russolo, 1912, h/t, 100 x 60 cm, Venise, Peggy Guggenheim Collection



세월호 유족 중에는 이런 분이 있다. 자신의 자녀가 학생들을 구하다 죽음을 맞이한 것을 알고, 자기 자녀의 죽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는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라 말했다. 그 분에게는 자녀의 죽음이 억울한 것도 원인을 밝혀야할 어떤 것도 아니다. 단지 자신이 받아들이고 그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느끼면 될 뿐이다.
인간에게는 여타의 존재들과 다른 위대한 능력이 있다. 의미가 있으면 어떤 것이든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는 능력말이다.
똑같이 밥을 굶어도, 돈이 없어 사먹을 수 없는 고통과 다른 이를 돕기위해 기부하는 대신 밥을 굶는 고통은 다르다. 후자의 배고픔은 우리에게 오히려 기쁨과 희열을 준다.

'젊은' 엘리후는 어떻게든 이 고통을 빠져나가기를 종용한다. 다그치고 화내고 논리과 과학적 지식을 모두 동원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통의 이유와 의미에 대한 숙고는 찾을 수 없다. 그의 삶에는 고통따윈 필요없다. 고통따위는 충분히 비켜갈 수 있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유없는 고통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고통의 이유를 알기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와 의미를 알기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통과하는 위대한 과정에 있는 욥과 그리고 나, 그리고 그들에게 오늘도 응원을..
마치 안개 속에 발을 딛고 있는 루이지 루솔로의 인물들처럼.
우리가 소음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아름답고 정제된 음악에 소음을 집어 넣고, 고상한 척하는 미술관에 일침을 가했던 그의 선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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