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un-frame

Ufan @jardin de Versailles

유산균발효중 2014. 8. 15. 07:04



몇 년전, 한국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장을 가득 채운 커다란 돌이 덩그러니 철과 함께 놓여있던 작품을 본 기억이 있다.
백남준 이후 최고의 작가라는 평을 받는 그의 작품은 별다른 감흥없이, 나에게 사진으로만 보는 존경스런 작가의 미술 교과서 속 작업일 뿐이었다.

오늘에서야 알았다. 내가 그의 작품에 그리 감동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화이트큐브 속에 놓인 그의 작품은 동물원에 갇힌 야생동물같은 느낌이었달까. 그리고 그가 있어야 할 곳에 놓인 우환의 작업을 보고서야, 나는 그에 대한 평가가 정당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한국 모노크롬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는 관객들을 주눅들게 만드는 뭔가가 있지 않은가? 추상적인 개념을 주입하듯, 해석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동양의 모노크롬 작업들을 서구 예술사와 동일한 기준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가?(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더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 등등에 대한 질문은 뒤로하고.



한참 동안이나 작품이 있는 장소들을 찾아 미로를 찾듯 걸으며 발견한 그의 흔적들은 정원과 작품의 대화를 보는 듯도 했고, 르 노트르와 우환의 대화를 보는 듯도 했다.

유한한 인간의 무한을 향한 염원을 그려보이는 듯했다.



이우환은 베르사유라는 인간이 만든 완벽한 모습의 정원을 걷는 명상의 시간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사유해보고 성찰하는 일은 우주의 기를 빨아들이거나 몰랐던 진리를 탁하며 깨닫는 순간이기보다, 땅을 밟고 공기를 느끼며. 하늘과 나무를 바라보는 주위를 둘러보는 일이라고도 가르쳐준다.

어쩌면 돌덩이와 철판을 무심코 지나가버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그것이 놓여 있는 그 공간이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아치를 정원과 수로가 보이는 지점에 만들어놓고, 그 사이로 바라보는 베르사유 정원 전체의 모습을 다른 관점과 시각에서 보도록 초청한다.

그에게 있어서 돌은 인류의 시간을 함축한, 아니 인류보다 더 오래된 시간의 담지자이고, 철이란 돌에서 파생된 인간의 문명이다.
이 둘은 서로를 향하여 말을 걸고, 때로는 반목하기도 하며, 가끔은 더 보탤 것 없는 완벽한 파트너이다.

주변의 모든 공간을 향하여 열려있도록 만들어진 그의 조각은 인간의 유한함과 어떤 존재의 무한함을 마주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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