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파리는 언제나 축제, 라는 헤밍웨이의 책 제목은 싱거운 관용구가 아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파리 전역에서 뭔가 축제가 하나 씩은 열리는데, 박물관/정원 축제에 이어 이번달은 음악축제이다. 물론 파리 뿐 아니라 프랑스 전역, 그리고 유럽의 곳곳에서도 열린다고 한다. 일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6월 21일)에 주로 저녁부터 시작되는 이 축제는 1982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꽤나 긴 역사를 지녔고 사람들의 호응이 뜨겁다. 라디오 프랑스에서 일하던 한 미국인 음악가가 아이디어를 냈고, 당시 문화부 장관이던 자크 랑이 추진한 프로젝트이다.
대규모의 공공기관이나 미술관은 물론 동네 카페나 노천 광장, 강변 등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한 평의 공간이라도 있다면, 음악을 연주한다. 기타하나 달랑 맨 아마추어부터, 오케스트라 까지. 록, 해비메탈, 어쿠스틱은 물론 교향곡까지.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파리의 이런 행사들을 성공적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잘 계획되고 정리되어서라기 보다는, 절대적으로 높은 참여율 때문이다. 산책을 즐기다가 들리는 음악소리에 그 자리에 머물러 함께 춤을 추고 박수를 보내주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것. 미술관에서 열리는 공연을 더 좋은 자리에서 보기 위해 2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것 말이다.
참여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컨텐츠는 자연 진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 파리에 와서 아직 클래식 공연을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파리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열리는 루브르로 목적지를 정했다. 일찍 나섰지만, 가는 길에 여기저기 한눈을 팔 곳이 많았다. 특히 대학가인 생 미셸 근처의 카페와 대로변은 아마추어들의 공연으로 빼곡했다. 강변의 햇살을 받으며 한참동안 서성거렸다. 10시 공연에 8시 반이면 여유있게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줄이 피라미드를 넘어서고 있었다. 안내원의 말에 따르면, 입장은 충분하다고. 알고 보니 공연은 10시 반이었고, 2000명정도 입장 가능하며 홀 바닥에 앉아 듣는 공연이었다. 루브르라는 공간이 주는 환상과 밤이라는 분위기와 피라미드 안이라는 공간이 만나서이기도 했겠지만. 땅에 웅크려 앉아 연주자의 얼굴을 볼 수도 없고 내 앞에 앉은 사람들의 머리 사이사이를 비집고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이 연주는 너무나 훌륭했다!!!
사실 파리 오케스트라에 대해선 별로 아는 정보가 없었고, 지휘자를 따져가며 음악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귀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말러를 듣는다는 흥분만 있을 뿐이었는데도. 연주는 매우 섬세했고, 3악장의 여운을 잘 살리고 있었다.
알고보니 이름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 Paavo Jarvi파보 예르비 라는 이 지휘자, 꽤나 유명한 사람이었다. 에스토니아 출신으로 생기를 잃어가는 악단을 미국 5대 악단으로 성장시킨 인물이란다. 발터 브루노같은 묵직함이나 두다멜같은 다이나믹이 아니라 섬세하고 곧게 전개해가는 힘이 있었다.
오랜동안의 기립박수. 오랜 여운. 연주회가 끝나고 한참을 강변을 걷다 집에 돌아 왔을 때까지 남아있을 만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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