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에 벼르던 일을 끝내고 나니, 오늘 하루동안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다. 눈은 책을 보고있지만 마음은 수면위를 거닌다.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아무도 쥐어주지 않은 강박을 스스로 떠안고, 효율적이고 목적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오래된 격언들로 머리와 마음을 채워보지만 나아지지 않는다.
나에게 희망을 말해 줄 누군가가 그리운 요즘. 계속 그렇게 발을 내딛으면 된다고 누군가 말해주었으면 하는 요즘.
한두달 전쯤에 들었던 말. -30도 일때도, -1도 일때도 겉에서 보기에는 얼음이라고. 하지만 1도만 올라가도 후자는 스르르 녹아버릴 것이라고 했다.
모교의 홈페이지를 찾아 주소를 메모하고,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마음을 어떻게 엽서 한장에 담아낼지 고민하다가 괜히 우울해져버린 밤. 이런 날 가끔씩 생각나는 강은교의 시.
우리가, 그 때 함께 이야기했던, 그 곳을 향해 가고있다면, 비록 지금은 조금 다른 길로 가고 있을 지라도, 서로 바라보는 배경이 다를지라도, 그 곳에서 만나 그동안 보고 만지고 들었던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