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시즌1

누군가의 장례식

유산균발효중 2012. 9. 22. 23:53


#1.

그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이번주 목요일에도 한강 낚시를 나갔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서울의 도심에서, 주말이면 빽빽하기 마련인 강변이 가장 고요한 날은 목요일이기 때문이다. 

낚시대를 드리우고 응시하는 한강의 물결은 저 멀리 지나가는 지하철의 모습과 어우러져 이곳에선 맛볼 수 없는 전혀 다른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퇴직한지도 3년이 되어가니 소일거리도 이제 지겨워지고, 여튼 이곳만이 그에겐 위로의 공간이다. 

어쩌다 그럴듯한 놈이라도 걸리면, 희끄무레한 회색빛 강에서 나오는 것치곤 꽤나 자랑할 만하다.

오늘따라 이놈들이 입질만 할 뿐, 딸려 올라오지 않는다. 


저 멀리서 뭔가 둥둥 떠 오고 있다. 한강에 수없이 잠겨있을 누군가의 소지품들. 어떤 놈들은 유람선에서 사랑을 고백하다 제대로 되지 않아 반지같은 귀중품을 던지기도 했을테고, 여자친구 앞에서 추태를 부리다가 신발 쯤은 한두번 빠뜨려 봤을테고,

몇달전에 그는 하늘에서 둥둥 떠내려 온 후라이팬을 건져내기도 했으니, 

한강은 서울의 젓줄이라기 보단, 서울의 쓰레기장 이라 해야 맞지않을까.

여튼 오늘 그의 눈에 비친것은 운동화다. 그것도 신기하게 두짝이 옳게도 나란히 떠 내려온다. 보통 강에서 두짝을 다 빠뜨리는 경우는 없지 않나-일부러 버린 것이 아니라면....

조금씩 가까워지는 운동화 두짝은 아무래도 오싹하다. 그리고 곧 보이기 시작한다. 운동화에 달려있는 두 다리가...아니 운동화를 신고있는 퉁퉁 불은 시체 한구가...교복을 입고 있는.


#2. 

2학년 과외남은 말했다. 그와 같은 과의 친구가 행방불명 일주일 만에 한강에서 낚시꾼에게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없어지기-정확히 말해 없어졌다고 판정하기-전 그의 페이스 북에는 곧 잊혀질 것이라는 짧고 담백한 문장이 남아있었다 했다. 평소에 그리 말도 많지 않았고, 별다를 것 없었던 그의 죽음에 충격에 빠졌고, 나의 과외남 역시 울먹거리며 이야기 했다. 

지난 이틀간 정신없이 울었던 모양이다. 외고에서는 더러 아이들이 잠깐 없어졌다 돌아오거나 우울증인 아이들이 많다고도 했다. 

난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3. 

석사시절, 한학기 혹은 일년에 한번씩 인문대 화장실에서는 시신이 발견되고는 했다. 화장실에서 죽은 그/녀는 새벽녘 청소하시는 분들에 의해 발견되었고, 그런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화장실의 빈칸에 들어갈 때마다 긴장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마도 오랜 기간의 혼자하는 공부와 유학생활, 돌아와서도 시간강사로 살아야하는 이들의 삶을 대변하는 사건들이 아니었겠는가. 내 기억에 몇번의 사건이 언론에 노출되어 이슈화 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4. 

내가 이 아이와 마주앉아, 삶과 죽음이 아닌, 삶의 목적에 대해서가 아닌, 진짜 삶에 대해서가 아닌,

이렇게 금방없어져버리고, 아마 그 아이의 행복에 어쩌면 10%의 영향도 주지 않을지 모를 이야기를 해야하는 이 순간이 싫다. 

그렇게 하지 않을 용기도 없는 지금 이 순간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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