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예정책의 시조로 불리는 프랑수와 1세는 1530년에 왕립학술기관으로서 꼴레주 드 프랑스를 창설했다. 근 5백년의 역사를 갖는 그곳은 어떠한 제도화된 의무와 절차도 부여하지 않는, 자유롭고 개방된 지식 제공과 교류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프랑스에서 그 기관은 프랑스 최고의 학문의 전당으로 불리고 있다.
그곳에서 교수로 활동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영광스런 일이다. 이는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소망이기도 했다. 그는 1970년 겨울에 자신의 소망을 실현할 수 있었다. 당대 프랑스 최고의 헤겔 연구자였던 장 이뽈리뜨(Jean Hyppolite)의 사망에 따라 그가 맡고 있던 ‘철학적 사유의 역사’강좌를 담당할 교수직이 공석이 된 것이다. 푸코의 취임강의는 『담론의 질서』로 출간됐는데 거기서 그는 자신의 학문이 이뽈리뜨에 빚지고 있음을 고백했다. 푸코와 이뽈리뜨의 만남은 푸코가 파리 고등사범학교입학 준비반에서 공부할 때인 194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렇게 보면 푸코가 이뽈리뜨의 자리를 계승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있는 일로 다가온다.
『주체의 해석학』(L’Herm?neutique du Sujet)은 꼴레주 드 프랑스 교수 푸코가 1981년 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진행했던 강의 내용을 정리해 출간한 작품이다. 책의 제목이 말해주고 있듯이 푸코는 방대한 양의 강의(우리말 번역본 515쪽)를 통해 ‘주체’(sujet)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푸코는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인 『광기와 정신착란』(1961) 이래 서구 근대의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러한 주체의 형성과정에서 ‘담론’, 특히 지식 담론이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그리고 진리의 외양을 갖춘 지식 담론이 어떠한 권력적 효과를 발생시키는지를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주체-지식-권력’의 근대적 관계 양식에 대한 푸코의 분석은 역사학, 과학사, 철학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구축된 ‘고고학’과 ‘계보학’의 방법론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는 근대를 역사적 진보의 산물로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근대 주체와 그 주체의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지식 또한 보편적 진리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지식 속에는 근대적 권력의 전략이 은폐돼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분명 역사는 이성과 진보에 의해 발전하며, 지식은 모든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실현해주는 동력이라는 믿음에 기초한 계몽주의적 역사관과 지식관에 대한 근본적 도전인 것이다.
서구의 근대에 대한 그의 비판은 1976년에 출간된 성의 역사 시리즈 제1권 『성의 역사: 앎의 의지』에서 정점에 달했다. 근대인의 ‘정신’(『광기와 정신착란』), ‘신체’(『임상의학의 탄생』) 그리고 ‘행위’(『감시와 처벌』)는 실증적 분석을 지향하는 과학적 지식에 의해 철저히 대상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를 통해 근대인은 자신의 모든 존재론적 조건과 행위를 통제하는 규칙과 원칙 및 도덕적 규범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존재, 즉 주체로 형성된 것이다. 여기서 푸코는 근대인의 성도 예외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1961년부터 열정적으로 진행된 푸코의 작업은 1976년을 기점으로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이는 푸코의 성의 역사 시리즈 제2권(『쾌락의 활용』)과 제3권(『자기배려』)이 1984년에 동시 출간됐다는 사실 속에서 명확해진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성의 역사 시리즈 2권과 3권이 1권과는 사뭇 다른 주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근대적 주체 형성의 담론이 은폐하고 있는 권력의 논리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근대적 주체의 종속성에 대립하는 새로운 주체 형성의 가능성에 대한 탐색인 것이다. 많은 푸코 연구자들은 이러한 방향 선회를 기점으로 푸코가 구조주의자로부터 포스트구조주의자로 이행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곤 한다. 또한, 푸코의 이러한 전환을 근대권력에 대한 비판을 포기하고 개인의 윤리로 이행한 것을 의미한다는, 일정정도 비판적 해석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푸코의 이러한 전환이 사실이라면 과연 그것이 어떤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는가를 물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답은 결국 『주체의 해석학』에 대한 논의 속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1984년에 출간된 성의 역사 2권과 3권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동안 꼴레주 드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윤리적 주체의 형성에 대한 꼼꼼하고 세밀한 분석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푸코는 어떠한 방향에서 새로운 주체로서 윤리적 주체의 형성을 탐색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윤리적 주체는 과연 사회로부터 고립된 개인적 주체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푸코가 지속적으로 견지하고자 했던 정치적 실천성을 담지하고 있는 것인가? 『주체의 해석학』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철학자들의 다양한 문헌들을 소개하고 분석한다. 푸코의 분석은 플라톤의 대화록 『알키비아데스』에서 출발하고 있다. 왜 그 책인가? 푸코에 따르면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대화를 관통하는 핵심적 주제는 ‘자기배려’(epimeleia heautou)라는 개념이다.
델포이 신전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가 기록돼 있다. 우리는 이 경구를 자기에 대한 ‘인식’으로 이해하지만 사실상 이는 자기인식이 아니라 자기배려로 해석해야 한다. 자기인식이란 대상화된 자신에 대한 지적인 앎이지만 자기배려는 다양한 실천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단련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자기인식과 자기배려는 전자가 자신에 대한 어떠한 변화도 기대할 수 없는 반면에 후자는 기존의 자신을 넘어서서 새로운 영혼을 가진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스 도시국가 시대에서 알키비아데스와 같이 특정한 계급, 즉 통치계급의 타인을 다스릴 필요성에 연관된 이 자기배려는 이후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모든 인간들이 영원히 수행해야 할 자율적이고 내적인 행위규범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 자기배려는 은둔과 고행과 같은 자기고립, 타인(특히 스승)의 말에 대한 경청, 자신의 행위에 대한 성찰과 그에 대한 글쓰기, 자기와 타인 사이의 솔직한 대화 등 다양한 기술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차원에서 이러한 기술들은 ‘자기의 테크놀로지’로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배려의 궁극적 목적은 자기 이외 어떤 외적인 목적이나 대상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자기 영혼과의 관계 맺기인 것이다. 푸코의 다음 주장을 음미해보자. “제우스는 누구일까요? 그는 단순히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존재입니다. 완벽한 순환성 속에 있고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일종의 순수 상태의 epimeleia heautou, 바로 이것이 신성한 요소를 특징짓습니다. 제우스는 누구일까요? 그는 자기를 위해 사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자기배려는 외견상 타자와의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고 존재하는 고립된 주체를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외적인 것에 대한 의존 없이 오직 자기 스스로의 내적 의지와 용기를 통해 자신을 거듭나게 함으로써 자기 삶을 유도하는 윤리를 내면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참된 자율적 주체의 탄생을 예고한다. 푸코의 표현을 따라 ‘데카르트적 순간’에 의해 망각되고 상실되기 시작한 이러한 자기배려의 기술은 서구의 근대사회에서 배제된 인간들(종속적 주체들)의 진정한 해방이란 정치사회적·법적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삶의 양식을 통한 새로운 주체의 형성에 있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하상복 / 목포대·정치외교학
필자는 파리9대에서 ‘한국의 정치변동과 문제의 동학(1979-1992)’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르디외&기든스(세계화의 두 얼굴)』등의 저서가 있다.
□ 푸코가 주목한 것은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알키비아데스의 대화다. 이들의 대화를 관통하는 주제가 ‘자기배려’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아테네의 플레이 보이였던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 시민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다. 그림설명 Jean-Bastiste Regnuolt, Socrates dragging Alchibiades from the Embrace of S(1785).
[더 읽어볼 만한 책]
플라톤, 『알키비아데스』, 김주일, 정준영 옮김, 이제이북스, 2007. 푸코의 윤리적 주체형성에 대한 논의의 시발점을 이루는 저작이다. 소크라테스와 유망한 귀족계급의 청년이었던 알키비아데스의 대화를 통해 자기배려의 개념에 보다 상세하게 접근할 수 있다. 서양고대철학 연구자들의 모임인 정암학당이 오랜 공을 들여 번역한 플라톤의 대화록들 중의 하나다.
푸코 외, 『자기의 테크놀로지』, 이희원 옮김, 동문선, 1997. 1982년 가을 미국 버몬트 대학교에서 ‘자기의 테크놀로지’ 연구 세미나가 개최되었는데 푸코도 여기에 참여했다. 그 세미나의 결과물인 이 책에는 푸코의 대담과 발표문들이 수록되어 있다.『주체의 해석학』에서 전개된 자기배려에 대한 방대한 논의를 압축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광기와 성의 철학자, 그 고통과 투쟁의 삶』(상·하), 박정자 옮김, 시각과 언어, 1995. 푸코의 개인사적 역정과 학자로서의 길, 그의 학문적 연속성과 불연속성 그리고 참여 지식인으로서의 삶, 특히 감옥에 관한 정보 공개를 위한 정치운동가로서의 삶이 면밀한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