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우뚱 묵상

결정적 순간

유산균발효중 2011. 2. 12. 01:32
꽤 결정적 순간이라고 여겨지는 성경의 몇 장면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몇 주 전에 들었던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이다. 
수 주에 걸쳐 듣고 있는 아브라함의 일생은 하나님의 약속, 계획의 신실하심과 성취가 영원에 닿아있다는 부활의 소망을 확인시켜준다. 더불어 하나님이 얼마나 아브라함을 잘 알고 계셨으며, 또한 그를 인격적으로 인도해가시는지도 말이다. 

띄엄띄엄 메모해두었던 내용들을 정리해본다. 

#1.
약속이며 분명한 인도이며, 신앙의 간증인 '이삭'을 바쳐야 되는 순간.

아브라함은 자기 자신을 설득시키고, 사라와 종이라는 타인의 시선과 의견을 넘어서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약속 자체인 이삭을 내놓아야 하는 세가지 장애물을 넘어선다.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곳까지의 거리가 3일 길이라는 사실은 어쩌면 하나님도 그가 요구하신 것이 얼마나 많은 신중함과 이성적인 결단이 필요한 것인지 알고계셨음을 반증한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도 하나님보다 높아지려 할때는 포기해야 한다.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 포기. 
이미 소유한 것에 해당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온전함을 기대하고 찾는 자들에게, 
대단한 아브라함이 아니라 평범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으로 빚어가시고 인도하신다. 

어쩌면 나 요즘 그 3일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아브라함처럼 모든 다른 구멍을 차단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방법을 체득하는 중인가 보다. 

헤아릴 수 없고 해석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목적과 계시가 열리는 사건이 지금 나의 삶에도 일어나고 있는 중인가?
(의문형으로 쓸 수 밖에 없는 아픔.ㅋㅋ)




#2.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인 막벨라 굴을 사는 장면은 천국의 소망을 품고 있는 성도들이 살아가야 할 방식을 보여준다. 

400세겔이라는 어이없는 가격을 치사한 방법으로 제시했음에도 어떠한 흥정이나 불평없이 돈을 치르는 아브라함.
그는 자신의 고향인 하란에 가족을 묻지 않는다.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불러내신 그 땅에 자신의 소속을 두고 살아간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 성취될 것인가? 마음이 늘 조마조마하다. 
영적으로 민감하고 충만할때는 곧 뭔가 이뤄질 것 같다. 
그러나 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댓가를 치러야 한다. 
때론 사라처럼 약속을 생전에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여전히 내안에 살아있는 현세적인 시선을 발견한다. 
하나님의 약속이 비단 땅에서만 이루어질 것처럼 생각하고, 
영원한 나라에 대한 시선이 어두어진 것을 회개했다. 

엄마가 병원전도를 하며 만나는 환자들의 죽음을 떠올리며, 
'영접하지 않고 죽는 것보다 행복하지'라는 생각이상을 하지 못한다. 
그들이 풍성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아빠를 보면서도 그렇다. 
아빠를 통해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면서도 풍성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다루신 것처럼.
그의 소망을 하늘에 두고, 나그네와 같은 현세를 인내와 댓가로 살아가도록 하신 그 하나님이 
나를 다루어가시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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