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시즌1

리영희님 안녕히.

유산균발효중 2010. 12. 9. 02:59






리영희, "진실을 나누기 위해서라도 글을 써라"


성성한 백발에 인자한 팔자 주름, 세로줄이 들어간 청색 양복을 단정히 갖춰 입은 영정 사진이 조문객을 맞았다. 12월5일 0시40분경, 리영희 선생이 향년 81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차남 건석씨는 “지병인 간경화가 악화됐고, 3주전부터는 의식이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병세가 깊었던 탓인지 장례식장은 차분했다. 

뇌출혈로 인해 펜을 들 수조차 없어 임헌영 선생과 함께 구술로 적어내린 자서전 <대화>(2005)의 마지막 장. 선생은 “내가 할 역할은 다 했고, 남은 역할은 내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주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변치않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어주던 리영희 선생의 모습을 우리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선생의 삶이 보여줬던 정신은 여전히 꼿꼿이 살아남아 산자에게 ‘죽비’를 들이대고 있다.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한 책임이 있다(<대화> 중)”라는 그의 얘기는 해직과 복직이 반복된 선생의 삶에서 고스란히 실천된다. 언론사와 대학에서 각각 두 차례 해직되고, 반공법과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10여 차례 구속·감금됐던 그의 경력은 선생에게 오히려 ‘훈장’이었다. 이를 통해 선생은 언론 자유는 ‘투쟁하는 자의 것’임을 웅변했다. 

   
ⓒ뉴시스


1957년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로 언론에 발을 내딛은 후, 1964년부터 ‘조선일보’와 ‘합동통신’의 외신부장을 각각 역임했다. 1969년에는 베트남 전쟁 파병 비판 기사를 썼다가 조선일보에서 해직되고, 1971년에는 군부독재 반대 지식인 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합동통신에서도 해직됐다. 1972년 한양대 문리과대학 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어 1980년 3월 복직되었으나, 그해 여름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 조종자로 분류되어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됐다. 한국사회는 그를 ‘의식화의 원흉’으로 몰아세웠지만, 1980년 선생이 구속됐을 때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그를 ‘메트르 드 팡세’(사상의 은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의 저서는 맹목적인 반공과 친미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낱낱이 해부하여 많은 이들을 깨우쳤다. 선생의 글쓰기는 반공과 친미라는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였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라고 선생은 <우상과 이성(1977)> 머리말에 적었다. <분단을 넘어서(1984)> <역설의 변증(1987)>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등을 비롯한 숱한 저작은 그 결과물이었다. 

   
ⓒ뉴시스
‘실천하는 지성’으로 불려 온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5일 새벽 별세한 가운데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장례 첫 날인 5일 빈소에는 정·관계 인사 200여 명이 조문을 마쳤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김두관 경남지사·안희정 충남지사·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 등 야권인사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정연주 전 KBS 사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여권 인사 중 직접 조문한 인사는 없었으나,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와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조화를 보내왔다. 

발인은 12월8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진행되며,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식을 거친다. 유해는 선생의 유언에 따라 광주국립 5·18 민주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차남 건석씨는 “생전에 화장해 광주에 묻어달라는 말씀을 하셨다”라고 말했다.

장례는 ‘리영희 선생 민주사회장’으로 4일간 치러지며,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고은 시인·임재경 전 한겨레신문 부사장이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고, 각계 인사 500여 명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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