來生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으로부터 우리는 이미 이 소설의 결말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흔하디 흔한 소재가 날렵한 글쟁이의 칼날에 요리되면 이렇게 단숨에 읽히는 재밌는 글로 변할 수 있음을 김언수는 유감없이 보여준다.
어쩌면 이 소설은 현대인이 관심없을지도 모르는 시궁창 같은 삶, 그러나 일상의 모든 부분을 잠식하고 있는 더러움과 추함, 욕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한자와 같이 깔끔한 양복을 입고, 엄청난 지적 허영을 만족시킬 수 있는 너구리 영감의 고서가에 앉아 손가락만 까딱하면 완성되는 선혈 낭자한 살인이 우리 삶의 이면에 늘 함께 한다.
설계자들의 강점은 무엇보다 킬러라는 단순한 소재를 설계자, 트래커, 표적,사수 등의 다층적인 구조를 지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주었다는 것이다. 사연없는 인물이 없는 이 세계에서 절대적인 강자나 약자, 선인이나 악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이들만이 있을뿐, 자신이 왜 이런일을 하는지, 왜 북극곰으로 태어났는지 고민하는 이는 이 세계에서 추방되어야 할 대상이다. 누구도 이상적인 목적을 갖고있지는 않다.
미토라는 인물도 흥미롭다.
이 소설이 속편이 쓰인다면, 미토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어 써도 재밌을 것 같다.
각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며, 미스테리가 하나하나 벗겨져가는 긴장감 가득한 중반부까지에 비해 후반부의 결말은 너무 맥이 풀린다. 어쩌면 래생의 죽음은 시궁창같은 삶에 대한 냉소와 복수이기보다 영웅적 죽음으로 읽힐 가능성이 더 많아 보인다.
총보다는 칼과 어울리는 작가를 만난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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