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에 왠 감수성?
예전에 썼던 '불편해도 괜찮아'에 대한 짧은 단상에 붙여
인터넷 서점에 들어갈 때마다 김ㄷㅅ교수님의 강연회 홍보를 보고 또다시 생각에 빠졌다.
인권감수성. 인권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 누군가-특히 인권을 보장해 달라고 싸울 대상이 없어진 20대-에게 폭력적이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꽤 매력적인 말이다.
나부터도, 요즘 학교에서 축제를 한다고 무언가를 팔고 계신 전태일 추모 어머니회나 다함께 같은 단체들을 보면 이질적이고 공감되지 않는 일종의 기념비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과거 인간의 권리는 늘 결핍된 무언가 였고, 희생과 투쟁으로 얻어야 할 대상이었던 것에 반해 지금은 가시적이지 않은 그럼에도 여전히 확실한 결핍의 상태이다.
저자가 기러기 아빠나 청소년 여성, 장애우 여성 등을 이야기 할 때 느끼는 것은 우리사회가 여전히 결핍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채우는 것은 과거의 방식과는 다르다. 저자에 따르면, 그 해결책은 바로 인권감수성!
나는 인권감수성이라는 말에 대해 심히 불편하다.
감수성, 외부의 자극을 받아 느낌을 일으키는 성질이나 능력, 즉 감성!
랑시에르는 예술이 곧 정치라고 이야기 했다.
기존에 몫을 갖지 못한 자들이 자신의 자리와 몫을 획득하게 되는 것.
그 방법은 이제까지 말 할 수 없었던 자들이 말하게 되는 것.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해 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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