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para-screen

에밀리 인 파리

유산균발효중 2021. 1. 7. 07:28

여행 못가는 이런 시국에 여기저기에서 많이 추천하는 파리 분위기 물씬 풍기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있다. '에밀리 인 파리'라는 드라마인데, 보기전 인상으론 '미드나잇 인 파리'의 라이트 드라마 버전이라고 생각했다. 미드나잇 인 파리가 프랑스 '과거' 문화예술에 대한 오마쥬라고 한다면, 에밀리 인 파리는 '현재'에 대한 리포트 느낌이다.

 

속도와 유행에 민감한 미국인의 눈으로 본다면 고루하고 답답한 프랑스인들. 내가 너희에게 마케팅을 한수 가르쳐주마 하고 자신만만하게 등장한 에밀리가 주인공이다. 자신의 상사가 예기치 않게 임신을 하게 되어 프랑스 파견근무지에 대타로 오게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다. 불어를 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파리 정착과정, 콧대높은 파리 패션계에서 살아남기, SNS를 통해 성공(!)하는 과정들을 담고있다. 그 과정에서 중국계 친구를 사귀게 되고, (이 캐릭터는 에밀리에게 프랑스 문화를 소개하는 역할로 소비된다) 아랫집 남자와 엮이고, 유부남의 추파를 받고. 하는 등 파리에 대한 클리셰로 뒤범벅되어 있다. 덕분에 유튜브에 '파리지앵들에게 묻다'류의 팩트체크 콘텐츠를 재생산하면서 선전하고 있다. 

 

파리의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들, 여행자들, 가볍게 즐길만한 헐리우드식 전개(아랫집 잘생긴 프랑스 남자, 당당한 미국여자의 성공기, 불어는 못하지만 직장에서 인정받게되는... 등등)를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드라마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보는 장르는 아니지만,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시국에 파리 집구석에서 바깥 파리 여행하는 기분을 불어넣는 시리즈였다.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프랑스에 처음 도착해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던 문화차이들이 솔솔 떠올라서 추억여행을 했다. 

 

상점에 들어가면 무조건 인사말부터 건네야 한다. (안그러면 안쳐다봐줌) 

건물은 0층부터 시작한다

Exité라는 표현을 쓰면 안된다 (지금도 종종 헷갈림)

점심시간이 엄청 길다. 

길에 노상방뇨를 하는 사람이 많다. (공중화장실이 잘 안되어 있기 때문)

년월일로 쓰지 않고 일월년으로 날짜를 표기한다. 

건물에 엘레베이터가 없거나 한두명이 들어갈 수 있다. 

수리하거나 서비스를 받으려면 아주 오래걸린다. (샤워부스가 고장났는데, 와서 수다만 떨다 가는 수리공)

등등... 

 

파리 오기전 불편할 일을 경고하는 예고 드라마로도 보기 적합한 듯하다. 

 

특히, 표현이 크고 과장되어 보이는 앵글로색슨 문화의 전형인 에밀리를 설정한 것과 에밀리의 시각으로 보면 굉장히 까칠하고 속모를 사람들의 전형으로 그려진 파리지엔 상사의 대비가 직설적이지만 흥미로웠다.에밀리를 통해 미국 20-30대 여성캐릭터를 희화화하는 동시에 그 미국인에게 비친 파리를 희화화하는 방식은 양쪽 모두에게 '그래, 이건 좀 과장이야'를 가볍게 받아들이게 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파리에 대한 클리셰이자 프랑스 인이 보는 미국인에 대한 클리셰를 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의 에밀리는 몇년 전 옆집에 살던 미국인 L을 떠오르게 했다. 대화 중에 갑자기 툭툭 끼어드는 감탄사들의 연발이나 큰 목소리, 어디서도 눈에 띄는 패턴과 색깔의 옷, 보수적인 정치색을 갖고 있으며 깍쟁이 파리지엔들과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한숨을 쉬다가도 에펠탑을 보며 "고우져스"를 외치고 프랑스가 생산해낸 소비재를 좋아하는...

 

 

잘 짜인 이야기나 개연성을 좋아한다면 비추이지만, 재미있고 가벼운 에세이 같은 드라마를 원한다면, 거기에 파리를 좋아한다면 추천하는 드라마다. 인물들은 진부하지만, 문화차이를 드러내는 에피소드와 파리 풍경들은 건졌다. 

 

그리하여 알로시네 평점은 약 2.9 

내 평점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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