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2

테러리즘의 시대를 사는 파리시민들의 일상

유산균발효중 2016. 11. 15. 05:08

북역과 동역을 지나는 5호선엔 언제나 큰 가방을 든 사람들로 북적인다. 초겨울, 월요일 낮 5호선은 사람들의 온기와 파리 사람들 특유의 검은 옷차림으로 더 꽉차 보인다. 약속시간에 늦지 않기위해 정신없이 올라탄 후, 사람들과 몸을 부딪치지 않아도 되는 구석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한 두정류장 지났을까? 사람들이 갑자기 웅성웅성 거린다. '이 가방 주인 누구예요?' '누구거예요?' 서너번 소리를 높여 물었지만 그 누구도 내 가방이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열차에 올라탈 때 보았던 큰 여행가방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캐리어는 아니었고, 천으로 된 크고 검은 스포츠가방 이었고, 지하철 기둥에 기울여 놓은 것으로 보아 분명 역으로 향하는 누군가의 짐가방이려니 했다. 사람들이 밀리면서 분명 주인과 함께 구석으로 옮겨졌어야 했을 가방이 몇정류장 내내 그렇게 있으니, 지켜보던 누군가가 가볍게 던진 말이었으리라.

몇번의 테러를 겪은 파리에서 가장 위협이 되는 물건 중 하나는 공공장소에 누군가 두고간 혹은 잊고 간 주인없는 가방이다. 지하철이 가장 많이 정차하는 이유도, 가끔씩 공항의 게이트가 폐쇄되는 이유도 바로 이 버려진 가방, '위험물로 추정되는 물질'이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가방이다. 오도가도 않는 지하철 때문에, 비행기 이륙시간을 한시간도 채 앞두지 않고 닫혀버린 게이트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른 적은 있지만, 그 '위험물로 추정된다는' 그 가방을 내눈앞에 보기는 처음이다. 

순간, 내가 탄 지하철 칸은 패닉상태가 되었다. 저마다 각자의 해결책을 내 놓는다.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웃어 넘기는 사람, 대체 누구거야 라고 소리지르는 사람, 출입문 앞 비상벨에 손을 올리는 사람, 저 멀리 이어폰을 끼고 있다가 다음 역에 도착해서 벨을 울리라는 짜증스럽고 바쁘단 표정의 젊은 청년. 이건 진짜 심각한 상황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아저씨. 다양한 반응이긴 하지만 뭔지모를 긴장이 감돈다. 

하필 도착한 다음역은 파리의 북역. 갑자기 사람들이 비상벨을 울리는 대신 그 가방을 밖으로 버린다. 아니, '용감한' 누군가가 얼른 던져요를 외치자 몇몇 사람들이 발로 굴려 열차 밖으로 떨어뜨린다. 누군가가 소리지른다. 아 저 가방에 이름표가 붙어있는걸? 그리고 유유히 열차는 북역을 지나쳐간다. 그곳에서 발견된 버려진 가방 때문에 열차에서는 계속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반대편 열차가 지체된다는 안내이다. 사람 많기로 유명한 북역 한복판에 떨어진 주인 이름이 쓰여진 가방은 누구도 접근하지 못한 채 그렇게 폭발물 제거반을 기다리고 있다. 그 주인은 자신의 가방을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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