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un-frame

Magritte_La trahison des images @centre pompidou

유산균발효중 2016. 11. 9. 07:34

마그리트를 굳이 초현실주의라는 '사조'로 가두는 것이 좀 뭔가 부족한 느낌이지만, 난해하고 기괴하기로 소문난 '초현실주의'자들 중에 대중에게 이만큼 사랑을 받는 이가 있을까? 게다가 점하나 찍힌 추상화 하나에도 한두시간씩 떠드는 데 익숙한 프랑스 인들에게 마그리트는 늘 꼭 봐야만 할 작가로 꼽힌다. '더 많은 진품'자체를 눈앞에서 마주한다는 의미보다는, 그의 작업을 어떤 흐름과 이야기로 엮어 냈는가가 주목해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중에게 소개되지 않았던 작업들을 전시하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특히 그가 가진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계보학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푸코에게 있어, 서양철학의 플라톤적 헤게모니인 이원론. 재현이라는 개념을 마그리트보다 더 '명시적으로' 혹은 '시각적으로' 무력화시킨 작가는 없을 것이다. 모든 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이원론을 토대로 구축되어 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은 저 이데아의 현현에 불과하다는, 그리하여 동굴에 매달린 수인과 같은 인간은 동굴의 안 쪽 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 이데아의 본질을 바라볼 수 없다. 예술은 이러한 플라톤의 언명을 입증이라도 하 듯, 캔버스 안에 캔버스 밖 세상을 더 잘 담아내려고 노력해 왔다. 소위 68혁명을 이끈 철학자들의 사유는 이러한 플라톤의 동굴로 부터 벗어나려는 혹은 애초에 동굴이란 존재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기획의 연속이었다.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소주제와 헤겔의 방학이라는 작품을 전시 포스터로 이용한 기획은 화가로서의 마그리트 보다는 '철학자'로서의 마그리트에 주목한 것이다. 

1전시실과 2전시실에서 소개하는 완결되지 않은 모티브들-커튼, 그림자, 단어, 불, 토르소의 신체-을 이용한 그림은 초현실주의자로서의 그의 태생을 증명하고 있다. 어긋나고 충격적이고 뭔가 모순되어 보이는 이미지들의 조합은 키리코의 영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키리코의 그림을 복제한지 4년만에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말놀이 그림을 그렸다. 이미지와 전혀 상관없는 글자들이 캔버스 위를 부유한다.  3전시실에서는 이러한 현실과 오브제의 불일치 상황을 '회화의 발명'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전시의 백미라 생각하는 4전시실의 제목은 '동굴의 알레고리'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마그리트 식으로 재해석 한 것인데, 마그리트의 동굴에서 수인인 관람자는 명백하게 동굴의 밖을 그것도 아주 탁트인 자유를 느끼게 하는 밖을 바라보게 된다. 내부와 외부를 무너트리며, 플라톤식의 이원론에 물음표를 찍는 상징은 여기에서 바로 불이다. 관람자의 인지에 혼란을 일으키는 바로 그 불. 그리고 마지막 전시실은 제욱시스의 그림, 너무 현실과 똑같아서 새들이 포도를 쪼아 먹으러 날아들었다는 그 일화를 보여준다. 마그리트는 제욱시스와 같은 방법으로 가장 대조적인 효과를 거둔다. 눈속임이지만, 현실을 떠오르게 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을 떠나도록 만드는 것. 

마그리트의 작업은 그 동굴이 늘 플라톤 식으로만 사유될 것은 아님을 선언하는, 다양한 의심과 질문들로 가득차있다. 이번 퐁피두의 전시는 마그리트 작업의 예술성보다는 철학적인 중요성에 더 주목한 기획으로 보인다. 보는 내내 뇌가 활성화되는 느낌이었달까. 





전시는 대략 이런 분위기. 월요일까지 야간개장을 하며 마그리트의 인기를 실감케함. 월요일 오후 한가운데 시간은 비교적 한산했다. ​


​마그리트 퐁피두 전시를 기념하는 그래피티가 빠지면 서운하지. 

ceci n'est pas un graffiti 란다. ㅎㅎ

퐁피두 입구에는 요런 주소판까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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