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상에 대해 자기만의 관점, 혹은 건강한 세계관을 가지는 것은 평생의 과업으로 삼아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임을 익히 인지하고 있었다. 요즘 나의 주업이 이레수발들기 이다보니, 육아에서만큼 건강한 관점이 중요한 곳이 있을까싶다. 무엇보다 장기적인 일이며 사람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레를 낳고 내가 참고하는 육아 소스는 그냥 정기검진시 만나는 소아과 의사, 보건소의 의사 간호사들. 몸이 있는 곳이 한국이 아니니 인터넷으로 접하는 한국의 육아 소스들은 너무 중구난방 뭔가 어질러진 공과금 영수증 보관함 같아서 안보는게 속편하다는 결론. 유일하게 내가 참고하는 육아 소스는 서천석의 팟캐스트인데 사실 이것도 지나치게 일반론적인 것이라 육아에 실제적인 행동 지침이라 하긴 좀 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천석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균형있는-프랑스에 살고있지만 프랑스인이 아니기에 따를 수 없는 프랑스식 육아와 한국인이지만 한국이 아니기에 따를수 없는 한국식 육아 사이-나만의 관점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레의 수면습관을 들이거나 생활리듬을 만들때에도 서천석의 팟캐스트에 초대되었던 전문인 게스트들의 조언을 참조했다. 그리고 세세한 문제들은 이곳에서 오프라인으로 만날 수 있는 의사들에게 의존하는 편이다.
갑자기 관점에 관하여 이야기하게 된 이유는 한겨레 기사를 읽다가 우연히 듣게된 또 다른 팟캐스트 때문이다. 심리학적인 접근에 기반한 이 팟캐에서 발달 심리학의 관점으로 육아를 다루고 있었다. 결론적으론, 각 발달단계에 맞게 아이를 다해고 그를 이해해주고 마음을 읽어주어야 심신이 제대로 발달할 수 있다 뭐 이런건데, 내가 원하는 접근방법은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상처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하는 육아가 얼마나 즐겁게 느껴질까?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마음을 읽어주어야 한다는 강박.
그것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삶의 불가피한 고통과 인생의 한계로부터 오는 좌절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은혜-를 앗아가고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서천석씨가 가진 자유로움에 많이 공감되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의 환경에 적응하기위해 취하는 행동들을 쉽사리 '병' '증상'이라 이름붙이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의 무게를 짊어질 수 있게 기회를 준다 여긴다. 각자가 독립적인 주체로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