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2

노란피부, 하얀가면

유산균발효중 2015. 11. 21. 23:35

흑인과 아랍인들이 모여사는 그 동네는 여행자들에게 왠만하면 밤에는 돌아다니지 말라고 충고를 하는 장소들 중 하나이다. 파리의 맥락을 잘 모른채 집을 알아볼 무렵, 너무 싼 집이 나와서 신나게 발걸음을 옮겼다가 지하철 역을 나오자마자 펼쳐진 생경한 풍경에 깜짝 놀랐던 바로 그 동네. 생경한 풍경이라 함은, 아프리카 혹은 아랍의 어떤 빈민가 쯤에 와 있는 듯한 인상. 벽에는 그래피티. 백인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거리 정도. 

그 동네 살고있는 지인의 말을 따르면, 11.13 테러 이후에 그 동네 거리엔 아랍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단다. 추가 테러가 발생할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외출을 자체하는 만큼이나,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향한 보복성공격을 두려워하는 아랍인들도 바깥출입을 자제하는 모양이다. 무슬림 가족들은 자녀들이 되도록 무슬림처럼 보이지 않는 옷을 입히고 공공장소에서는 말조심을 시킨다는 기사도 나왔다. 샤를리 앱도때 이슬람을 테러리스트와 동일시하지 말자는 담론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엔 이슬람을 IS와 동일시하지 말자는 류의 슬로건은 그때처럼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명백하게 이들 모두는 같은 권리와 자유를 누리는 프랑스 공화국의 국민이다.

이레와 병원 다녀오는 길에 탔던 버스는 강을 가로질러 북쪽까지 가는 노선이었는데, 버스 안에서 괜히 우락부락 혹은 껄렁해보이는 아랍인들을 흘깃거리게 되더라. 그를 바라보는 또 다른 이들과 눈이 자주 마주치는 걸 보니 나만의 흘깃거림은 아니었나보다. 오랜 세월 축적되어 온 아랍계 프랑스인들과 본토 프랑스 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은 야만적인 방법으로 식민지를 거느리고 전쟁을 일으켰던 과거를 지닌, 다인종 국가 프랑스가 가진 또 다른 이면일테다. 드러내 놓고 인종차별주의적 발언을 하는 이들을 미개인 취급하지만, 아랍인종 프랑스인들이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분을 확인해본다면 이 보이지 않는 벽의 실체를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찌 그 벽이 쉽사리 없어지랴. 아랍커뮤니티는 이 테러로 인해 이중적 아픔을 겪고 있다. 역사적으로 축적된 사회와의 부조화에 더불어, 일상에서 체감되는 경계의 시선들까지. 

그런데 이도저도 아닌 제3의 외국인인 우리는 늘 '백색의 프랑스'인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일까? 수난의 역사를 겪은 동질감은 아마 아랍인들과 더 가까울텐데. 너무나 일상화되어있는 제국주의적 시선. 파농이 이야기 했던, 검은 피부에 하얀가면을 쓴, 그들이 지금 우리 안에 살고있다. 그리하여 다른 제3세계에서 벌어지는 학살에 관심이 없으면서,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벌어진 테러에는 온 한국이 들썩거리는 것일게다. 동시에 주변에선 흔히 찾을 수도 없는 아랍인들에 대한 괜한 적계심과 경계심을 가감없이 드러내곤 한다. 노란 피부지만 하얀 가면을 쓴. 

단일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국에선 이러한 경험의 부재-다양한 인종간의 갈등과 그 갈등을 사회적으로 해결해가는-가 앞으로 사회문제의 중요한 이슈해결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급격하게 유입되는 다른 국적의 사람들을 향한 현재의 시선이 한두세대 후에 일어날 일들의 씨앗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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