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2

50유로, 기회비용

유산균발효중 2014. 7. 4. 01:46

프랑스에와서 지출한 서류비용은 아마 한국에서 30년 살 동안 지출했던 서류비용의 10배는 넘는 것 같다. 학교든 공공기관이든 인터넷으로 한두번 클릭에 결제에 사진 첨부가 아주 일상이었던 것에 반해, 프랑스는 아직도 편지로 서류를 보내고 그 편지에 우리집 주소를 적은 반송용 봉투를 함께 넣어 보낸다. 답변도 편지로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인터넷에 약하다거나 첨단의 테크놀로지에 취약한 것은 절대아니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한국의 IT가 유럽에 비해 엄청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생각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물론 기술분야에서 많은 지원과 인프라가 있는 한국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러한 기술은 적절한 맥락과 상황을 갖지 않으면 별 구실을 못하고, 창조적인 기획력이 없으면 그냥 껍데기일 뿐이다. (이 말을 쓰는 순간 돌 날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어쨌든, 

그 서류. 2학기에 김이 대학에 있는 불어과정을 들었으면했다. 물론 여기까지 왔는데 제대로 배워라 그런 의미도 있겠지만, 이 나라는 말과 언어가 중요한 나라고 숨어서하는 노력이나 성실함보다 대화와 회의를 통한 의사소통이 훨씬 중요한 문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 중 전문번역가의 공증서류가 필요한데, 김이 그 서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현실적으로 대학으로 등록하면 상대적으로 출석률에 대해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당연히 아르바이트 때문에 결석을 밥먹듯이 할텐데, 그냥 지금처럼 사설학원에 다니며 생활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서류를 얼른 맡겨야 한다는 나의 말에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화를 내며 눈에서 불이나왔다. 물론 그 분노는 나에대한 것이 아니며, 이 생활을 유지하는 힘겨움과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비롯되었음을 잘 알고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나처럼 그렇게 대책없이 무엇이든 저지르는 '비현실'적인 사람이 아님을 재차 강조했다. 이게 현실이야라고 한 두세번 정도 같은 문장을 반복했다. 50유로가 절대적으로 비싸서도 있지만, 그 비용을 지불하면서 미래에 하지 못할 일을 위해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김을 통해 나의 비현실성을 본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말하는 그들의 어법을 발견한다. 50유로는 기회비용이 아니라 그냥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지출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버려진 내 동전들을 주워오고싶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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