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2

산책자의 주일

유산균발효중 2013. 7. 28. 08:37

힘든 주일이었다. 평소보다 더 더욱.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더 오버하여 명랑 쾌활하게 되고, 그게 또다시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언제쯤이나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둔촌동에 있을때는, 이런 기분이 들었던 주일은 어김없이 한강을 질주했다. 파리는 자전거 시스템이 매우 잘 되어 있지만, 오락을 위한 도구였던 한강변의 라이딩과는 달리, 자전거를 이동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강변에서 쫄쫄이 옷을 입고 휙휙 옆을 지나가는 동호회원들을 조심해야 한다면, 이곳에서는 차와 같은 방식으로 교통법규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긴장하며 차도를 질주해야 한다. 


여튼, 파리에와서 이런 기분이 들때는 주로 Saint Marcel 근처를 배회하곤 하는데, 그곳의 활기,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푹푹 꺼져버릴 것 같은 모래가 단단해지는 느낌이다. 

오늘도 그랬다. 불어의 두 동사 flâner와 se promener는 한국어로는 둘다 산책으로 번역할 수 밖에 없지만, 이럴때 쓰는 단어는 아무런 목적없는 거닐기를 의미하는 전자에 해당한다. 보들레르가 선택했던 그 단어. 그렇게 도착한 노트르담. 


마침 미사 시간이었다. 

가운데 경건하게 기도중인 사람들 가장자리로 찰칵찰칵 거리는 관광객들이 뺑 둘러 성당을 구경하는 장면이 어딘가 모르게 기괴했다. 이 두 구역 사이 즈음에서 나는 이들이 드리는 미사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파란 옷을 입은 수도사 두명이 부르는 찬트가 성당의 높은 천장에 닿아 흩어졌다. 

강론을 하는 신부님 앞에 한 수도사가 연기가 나는 무언가를 양옆으로 흔든다. 그것을 흔들고 있는 수도사의 몸짓은 매우 기계적이었지만, 아주 경건해보였다. 아주 멀어보이는 그 두 극단에서 원점을 중심으로 흔들리는 추처럼 중심을 잡아가고 있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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