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시즌1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

유산균발효중 2012. 11. 23. 23:00



하루하루가 숨이 턱 막히는 요즘, 가장 많이 생각나는 시절이 2006년 여름이다. 8월쯤 대책없이 서울에 상경해 신림동을 떠돌며 방을 찾아다녔더랬다. 코딱지만한 고시원 방, 창문도 없었고 들어가는 길도 침침했던 복도들, 쾌쾌한 고시원 냄새나는 방들이 25만원을 웃돌았다. 하루 종일 땡볕에 전단지를 떼어가며 찾은 방, 꽤나 꼭대기였기만 다른 방들의 두배인데다가 창문도 엄청 넓고 방 크기도 다른 곳의 두배였던 그곳! 게다가 19만원이었던 그 방. 거기로 나를 안내해주던 고시원이름 만큼이나 천주교인처럼 생긴 머리가 황갈색인 아줌마의 뒷모습과 말투가 떠오른다. 

20대의 우여곡절들 중 가장 힘들었던 몇달을 생각하면 어김없이 그때가 떠오른다. 물론 원하는 일에 도전하기위해 정신없이 달려가던 중이었다. 그래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기도 했다. 그때가 힘들었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당시에 쓴 어떤 일기도 기록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통을 회피하고 싶은 나의 깊은 열망은 기록을 하지 않아버리는 것으로 표출되었던 듯하다. 

이렇게 난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잊었다. 아니 잊어'버렸다.' 잊어버리곤 한다. 빠릿빠릿하고 사람잘기억하는 내가 과거를 잘 생각해내지 못한다는 이 아이러니.

당시와 비슷한 감정이 물씬 올라오는 요즘! 단 스물다섯의 나에게 위로를 보낸다. 그리고 지금은 하루하루를 돌아보고 힘듦을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고, 나의 감정을 솔직히 대면할 단단하고 조금더 건강해진 자아가 있음에 감사한다.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 내가 보고있는 것이 어떤 감정이든 그것을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삶의 여유 아니겠나! 


달밤에 김과 동네를 산책하며 했던 이야기들을 기록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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