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시즌1

등록

유산균발효중 2012. 10. 26. 16:47


0. 아직


언젠가 이런 성격의 글로 우리의 선택에 대한 '나의 소견'을 정리해 놓아야겠다 싶었다. 아직 모든 것이 정리되진 않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이 감정을 저장해야겠다. 그게 굳이 오늘인 이유는...

머뭇거리는 사이에 수많은 할인혜택이 있는 만27세가 훌쩍 지나버렸고/ 조마조마해 하던 사이에 보호자 없는 아이이자, 졸업마저 되어버린 끈 떨어진 연같은 신세는 물론/ 멍때리던 사이에 서른이 되어 결혼까지 한 상태가 되었다. 

수동형을 쓰긴했지만, 저 동사 안에는 수많은 사건과 보이지 않는 싸움이 깃들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혼인신고를 했다. 


1. 시작


1.1. 이미 7개월이나 지난 결혼식을 이제서야 신고한 이 상징적 사건은 참 유감이다. 너무 늦어서가 아니라 너무 빨라서..(그리고 여기서 줄곧 내가 쓰는 결혼의 의미는 법적이고 공식적인 신분증명서를 뜻한다.) 이런저런 빈칸을 채우고- 거의 김과 나의 신상과 부모님들의 개인정보-제출하고 나올때의 찝찝함이란. 단순히 보호자를 갈아타는 것 이상에 무언가 박탈당해버린 이 느낌이 싫었다. 난 진정 남은 생애를 set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허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니 하나님이 허락하신 질서 아래에서의 삶이니 뭐니 부모를 떠나 독립해서 한몸을 이루니뭐니 그런거 말고 (이미 이런것은 결혼제도가 아니라도 실현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이 많으니.)아직 무릎을 탁 칠 만한 이렇다 할 근거는 모르겠다.  

만약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련의 등록과정이 필요 없었다면 앞으로 계속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여튼, 신세타령은 이만 각설하고 이제부턴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


1.2. 혼인신고에 이어, 또 다른 등록을 진행 중이다. 진행형인 이유는 완료되진 않았기 때문.

이제는 당위성이 없어져버린 이 '미래'를 무리해서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몇년간 스스로에게 하고 또 했던 이 질문을 이제와서 꺼내는 것이 민폐인 줄 알면서도, 누군가 시원하게 "넌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라고 말해주길 기대해본다. 누가 말 안해주면 내 스스로 증명하기위해 난 또 이를 악 물고 열심히 살아가야 할 것이기에...하지만 눈치없는 누군가는 마냥 부러워만하고, 또 누군가는 마냥 걱정만 한다. 

나에게 가지 '못'할 핑계였던 것들이 하나하나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물론 아주 느릿느릿해서 그 당시에는 눈치챌 수 없었지만.. '못'간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굳이 그럴 이유조차 없어져버렸다. 


2.  머뭇머뭇


2.1. 결혼하며 고수했던 제 1의 원칙은 순수하게 우리의 수중에 있는 재정으로만 결혼식을 치르는 것이었고, 어느 정도 기대대로 지켜졌다고 생각한다. 결혼식을 준비하며 가장 많은 에너지를 썼던 곳이 바로 이부분이기도 했다. 일반인(누군지 모르겠지만)들이 하는 만큼만 하라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부모님의 말씀에 대해, 마치 독립투사라도 된 것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고 우겨댔다. 그게 앞으로 우리 가정이 최대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우리가, 띠로링. 

며칠 전 김어무니와의 통화, 상기된 목소리로 즐겁게하시는 말씀인즉슨, 우리보다 나이를 더 먹은 아파트를 하나 장만하셨단다. 노후를 대비하야 조금 무리했으나 기분이 참 좋다. 아들이 일찍 결혼해버리니 목돈 들 곳이 없어서 좋다고 하셨다. 너희가 여기와 살면 차암 좋을텐데하시며, 엄청 신나하셨다. 지방의 작은 도시의 변두리 그것도 삼십년이나 된 아파트가 얼마나하겠어 하면서도, 그게 얼마일까를 셈 해본다. 그때 괜히 잘난척했다며 후회도 해본다. 

곧 죽어도 자존심은 아직 살아있다. 이것저것 등록비용을 계산하며 도저히 답이 안나오는데, 그냥 어쩌겠어 해버린다. 언제부턴가 입에 붙어버린 '돈만 있으면...'이 나의 발목을 붙들고 있음을 깨닫고 정신이 퍼뜩든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이 두려움


2.2. 마침 피나바우쉬에 관해 쓴 책을 읽었다. 피나가 시립극장으로 옮기게 될 즈음, 피나의 역량을 시험하는 무대였던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를 제안받게 된다. 

<탄호이저>작업을 시작하기 직전에 피나 바우쉬는 몹시 앓았다. 병을 핑계로 거절하고 싶은 유혹이 엄청나게 컸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무의식이 만들어 놓은 함정을 알아냈고, 책임감을 가지고 도피를 그만두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컸든 피나 바우쉬는 이것을 극복했다.-그렇다고 앞으로 작업을 할 때 두려움이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성공도 여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 어떻게든 될 거야, 나는 벌써 여러 일을 해냈잖아 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두려움은 언제나 똑같지요." 

피나 바우쉬의 이 말을 내 식으로 패러프래이즈해서, "너는 벌써 이런 저런 일을 해냈잖아 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두려움은 언제나 똑같지요." 그러나 이런 말도 피나 바우쉬가 할 때에나 들어줄 수 있는 말 아니겠어?! 



3. 그래도 시작


3.1.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학교에 다니고 논문을 썼지만, 이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일이 쉽지 않다. 환원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사회의 새로운 자원을 창출할 수 있는 종류의 것으로 되돌려보내는 모든 종류의 노동이 되겠다. 물론 원천적으로 봉쇄된 것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겠지만, 창조적인 환원을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안정적인 자리가 보장되어 있어야하고, 그 자리를 보장받기 위해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모든 창조성을 일단 조직에 반납해야 한다. 이 역설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도 모르는 새, 최초에 품었던 그 목적은 적응과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져버린다. (실제로 지난 여름동안 했던 프로젝트를 통해 짧고 굵게 깨달았다.)


3.2. 물론 그곳에서는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적 희망만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말과 글로 하는 나의 일이, 남의 나라 말과 남의 나라 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미지수이다. 오히려 더 폐쇄적이고 오히려 더 손발이 꽁꽁 묶이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험하기 전에 말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것이 나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로 남았다. 


3.3. 일상에서 영원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성도의 삶에 대해 배웠다. 나의 선택이 이것과 부합하는 것인지, 회피는 아닌지 자신이 없었다. 다만 이것은 안다. 그곳에서는 먹고 살기위해 더 애써야 할 것이고, 여기서 통용되는 어떠한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이며, 더 손발이 부지런해져야 할 것이다. 


덧, 아주아주 깊은 속마음은, 남들은 아주 쿨하고 가볍고 즐겁게 떠나는 것을....이렇게 심각하게 의미를 부여해가며 고민고민 머뭇머뭇하는 나에 대한 푸념. 


여튼 이렇게 우리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출발선을 넘어버렸다.






 






'속좁은 일상_시즌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정  (1) 2012.11.01
두 사나이  (0) 2012.10.28
햄볶아요-  (0) 2012.10.15
오늘의 날씨  (0) 2012.10.10
누군가의 장례식  (1) 2012.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