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under-stage

[응시] 권진규의 삶과 예술에 관한 연극

유산균발효중 2011. 5. 15. 22:57





권진규의 삶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응시]라는 연극을 보았다. 
작년 초 덕수궁 미술관에서 인상적으로 보았던 그의 작품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게 했고,
권진규의 작품세계와 캐릭터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연극이었다. 꽤 집중을 필요로하는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대사들이 많았는데, 연륜있는 배우들의 연기로 몰입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무대 연출, 그중에서도 무대 영상이었다. 

권진규의 필체나 작품들을 프로젝터로 무대 뒷벽 전체를 사용하여 나레이션과 함께 흐르게 하였는데, (흐른다는 표현이 적절하게 느껴진다.) 극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사진으로 보았던 권진규의 아뜰리에를 재현한 무대의 분위기도 통일감있었다. 

그를 비운의 조각가라고 부른다고하는데,
그의 비운은 외부적인 가난이나 세계와의 불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내부에 있는 예술에 대한 고뇌와 인간정신의 심연을 끊임없이 파악하고 예리한 손으로 그것을 실현해내고자 고민한 그 자신의 선택이었으리라.

권진규의 삶을 극화하면서,
준태라는 인물의 눈을 통해 그의 작업을 보여줄 뿐 아니라,
도모의 시선을 통해 권진규의 사랑과 일본에서 느낀 이방인으로서의 자의식 등을 느껴볼 수도 있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극에서 보여줄 수 있는 반전과 시각적 요소들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선형적이지 않는 이야기 구조를 택해 등장 인물 모두의 시선에 동화될 수 있도록 잘 짜여져있다. 








권진규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대사들이 몇개 있어 옮겨와 본다. 

-차츰 어두어지는 무대에 소리들이 뒤섞이며 합창처럼 들리다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무대 한쪽에 웅크리고 고민하던 남자가 흉상을 만지며 중얼거린다. 

남자: 허영과 종교로 분칠한 얼굴, 얼굴, 얼굴들, 그 껍질을 나풀나풀 벗기면서 한점 한점 진흙을 발라야 한다. 두툼한 입술에서 욕정을 도려내고, 정화수로 뱀같은 눈언저리를 닦아내야겠다. 지워도 지울 수 없는 얼굴....
(중략)
너는 보이는 것을 본다. 본다고 생각한다. 본다고 믿는다. 본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보이는 것은 정말 거기 있는게 아냐. 그 뒤쪽......안에.....아주 깊이.....거기.....실재는 언제나 존재의 뒤에 있어. 기다려야 하. 가만히, 흔들리지 말고, 전체가 드러날 때까지 기다려서....그것이 일어나서 나한테 말을 걸어 올 때까지....집중해야 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일 때까지.....들리지 않는 것이 들릴 때까지


소리: 진실의 힘의 함수관계는 역사가 풀어야 한다. 그릇된 증언은 주식거래소에서 이루어지고 사랑과 아름다움은 그 동반자에게 안겨주어야 한다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건칠을 되풀이 하면서 오늘도 봄을기다린다. 까막까치가 꿈의 청조를 닮아 하늘로 날려 보내자는 것이다. 마지막 등불은 시울고 나는 더 머물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마지막 갈기 한올까지 다 어둠 속에서 끌어낸 말을 거꾸로 타고 나는 오랫동안 내가 묻혀있던 무덤의 문을 연다. 
 



 권진규의 아뜰리에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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