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존재할 것 같지만,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일들
2015년의 대한민국을 가장 극단적으로 뒤집으면 1988년 쌍문동이 되지 않을까.
아빠의 경제력이나 엄마의 정보력 없이도 가장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국민학교만 나와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살 수 있고, 공교육과 독서실만으로도 대학입시를 치를 수 있는. 급우는 경쟁의 대상이 아닌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반자이며, 동네 친구들 집을 오가며 라면을 끓여먹고 야한 비디오를 함께 볼 수 있는 그런 과거. 혹은 과거라 믿고싶은 환타지.
누군가는 이 드라마가 추억을 되살려준다고 말하고, 마치 자기 아빠같고 자기 엄마같은 사람이 나온다 말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야말로 드라마가 현실에 줄수있는 가장 큰 선물인 환타지를 제공한다. 현실의 우리아빠도 친구 빚보증을 잘 못섰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도 다녀보았고,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밤에는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시끄럽게 하며 봉투에 사들고온 각종 잡동사니들을 펼쳐놓으며 추궁을 당했더랬다. 현실의 우리엄마도 콩나물 500원어치를 사며 한줌을 더 얹어달라고 실랑이를 했으며, 친한 친구 형님들에게 만원 이만원씩 돈을 꾸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까. 내 환타지 속의 우리아빠는 다혈질이지만, 때로 다정스럽게 몰래 생일파티를 해 준다거나 집을 떠나 독립하는 딸에게 약봉다리 하나쯤은 챙겨주는 아빠이다. 현실에서는 낯뜨거워 할 수 없는 말들이 드라마속 아빠의 입에서는 마침내 내뱉어진다. 그 아빠의 모습을 보며 울고 웃는다. 현실에 있을 법하지만, 절대 있을 수 없는 현실과 허구의 반반짜리 캐릭터들.
오랜만에 카타르시스를 느껴본다. 아리스토텔레스께서는 말씀하셨죠. (정봉버전) 원래 비극이 이 카타르시스를 극대화 하는 장치들로 가득하다고 말이죠. 그래서 2015년의 비극적 상황 때문에 드라마의 희극적 상황은 우리를 더 많이 울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