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하지 못하는 과업을 대신 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의지한다. 마침내 그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는 그를 찬양하고 응원한다. 만약 그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에는 등을 돌릴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문제는 사실 그 과업이란게 영화 속 슈퍼히어로가 필요한 정도의 일은 아니라는 데 있다. 우리가 그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절대적인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단지 귀찮아서 혹은 손해보기 싫어서, 그것도 아니라면 책임지기 싫어서 일 뿐.
교황의 방문을 둘러싼 교계의 논란이 뜨겁다. 천주교의 정통성이 어쩌고, 교회는 왜 못하냐 뭐 이런 식의 낡아빠진 이야기들에서 전운이 감돌정도이다. 정치적, 경제적 마케팅 열기도 뜨겁다. 프란시스 교황은 아마 상상도 못할 정도로 그를 이용한 각종 자기계발 서적이 나돈다. 아마 그 서적의 내용은 교황의 가르침과 정확히 반대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이들을 돕는 인류애를 실천해 어쨌든 훌륭한 인간이 되어보자는 식의 자기계발서적.
프란시스가 교황이 될 때, 난 카톨릭에서 불어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우리반에 이탈리아인 할아버지가 있었다. 신부였고 무슨 고고학분야의 학자이기도 했다. 쉬는 시간이면 새로운 교황에 대해 질문하는 이들과 열심히 토론하곤 했다. 천주교 내부에서 그의 급진성에 대해 품는 불편한 심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현대인의 구미에 맞는 교황이라는 것은 명백하다는 둥. 천주교 문화권에 살다 온 아이들은 새로운 교황에 대해 관심이 컸고 그의 전력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아시아에서 천주교인이 아닌 이상 교황, 추기경 등등이 뭘하는 사람인지 누군지 알게뭔가. 그래서 난 교황의 방문이 한국의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이슈가 된다는 사실이 새롭다.
덧붙여, 나는 왜 30일이 넘는 단식을 하는 그를 말리지 않고 응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고민해 본 적도, 어떻게하면 다른 사람들을 도울지 생각해 본적도, 세계의 불평등이 나의 책임이란 연대의식을 한번도 가져본 적 없는 우리가 그 일을 실천하는 한 개인에게 이렇게 열광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이들이 하고 있는 일은 우리 모두가 일상적으로 해야할 일이 아니었던가. 우리가 할 일은 경기장 밖에 앉아 소리를 지르며 그들을 응원하거나, 푸른 잔디를 밟으며 들어오는 선수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우리도 그 경기에 함께 참여하는 한 선수가 아니었던가.
하나더 덧붙여,
그리하여 유민이 아빠와 프란시스교황이 만나는 그 장면은 오래오래 기억해야 할 장면이 될 것 같다. 우리가 해야하는 일을 혼자의 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부채의식과 함께, 감사했다.
그리고 900km를 십자가를 매고 걸었던 유가족인 두 아빠의 인터뷰를 보며, 예수님이 얼른 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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