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시즌1

부권상실의 시대

유산균발효중 2011. 12. 25. 23:13
예수님이 오신 기쁜 날인데, 아침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밤새 뒤척였다. 바야흐로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개인적으로 올해를 '부권상실의 시대'라 이름붙였다.  
혹자는 없느니 못한 부권을 갖느니보다는 오히려 상실한 것이 낫다고 말했다.
아마 한 3년 전쯤의 나라면, 아니 1년전쯤의 나라면 그 말에 쉽게 동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실해보지 못한 대상에 대하여,
상실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은 기득권의 여유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나에게 첫번째 부권, 생물학적인 부권인 아빠는 우리가족 모두에게 아픔과 고통의 대상이었다. 
이미 나에게는 남아있지않은 그에 대한 미움과 부담감은 사춘기 때부터 얼마 전까지 나를 이끈 감정이었다.
그가 팔 한쪽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누워있던 지난 2년 정도의 시간은 이 모든 감정을 해독하는 시간이었다.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으로만 이해되는 그 시간 안에서.

나에게 두번째 부권, 사회학적인 부권이라 이름 붙일만 한 지도교수는 지난 일년간 안식년을 맞이하여 자발적으로 논문지도권을 다른 심사위원들께 위임하였다.  안식년이라는 이유로 1학기 논문지도를 패스했으며, 어쩔 수 없이 늘어가는 지도학생들 덕분에 나는 기사회생으로 2학기 논문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지도교수 없이.
그래서 난 처음으로 지도교수의 역할에 대해 인지할 수 있었다.
심사장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도에 크게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오늘부로 상실한 세번째 부권, 정서적인 부권을 지닌 화님마저 떠나셨다. 
어쩌면 난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쿨하고 자율적으로 그 부권을 누군가에게 양도하는 것처럼,
이 상황을 해석하고 타계하기 위한  자기보호임을 알면서도.
그의 (his) 혹은 그의 (His) 선택이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정말 나의 아버지는 딱 한분밖에 없다.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라는 말이 이렇게 문자적으로 와닿은 때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말, 
죄인 중에 괴수인 날 위해 예수가 오셨다는 그의 마지막 설교-고별설교라 하기엔 너무나 그분다운-가 꽤나 와닿았다. 
쓸쓸함과 허전함이 당분간은 계속될 듯하다. 


  성탄의 즐거움 또는 허전함을 달랜 이들과 한 컷. 한 껏 흔들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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