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para-screen

Wild, 2014

유산균발효중 2015. 7. 3. 05:40

파리의 미친 더위를 핑계로 며칠 한가한 틈을 타, 미뤄두었던 몇편의 영화를 보았다. 로드무비류의 서사가 가진 진부함 때문에 사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밖의 수확이다. 편집이 너무 멋져서 찾아보니 달라스 바이어스클럽의 감독 장마크발레다. 그가 매튜맥커너히를 사용했던 방식만큼이나 리즈 위더스푼의 발견도 의미있다. 어쩌면 전형적인 여성의 홀로서기 서사를 그는 아주 건조하고 객관적으로, 그러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최근 인상적으로 보았던 여성인, 클라우드 오브 실즈 마리아의 그녀는 자연을 더 정확히는 시간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여성이었다면, 와일드의 셰릴은 일부러 자연에 몸을 던져 몸 안에 축적된 시간을 곱씹고 되새김질하고 받아들인다.  

영화내내 엄청나게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이 펼쳐지는데, 역설적이게도 그 풍경에는 잘 눈이 가지 않는다. 

오로지 그녀의 무거운 짐가방과 조심스레 내딛는 한발한발과 긴장으로 가득한 동그랗게 뜬 눈에 주목하게 될 뿐이다. 어둠 속에 텐트를 칠때마다 어디서 다가올지 모르는 위협에 같이 무서워하게 될 뿐이다. 셰릴이라는 동명의 여인이 쓴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이 이야기는, 낭만적인 하이킹이나 내면치유의 로드무비가 아닌 험난한 야생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셰릴은 무려 4000Km를 94일동안 완주한다. 오롯이 자기의 몸과 부딪히며 '홀로' 걸어가는 모습이 나에겐 감동이나 경이보다는 무언가 아릿한 슬픔으로 느껴졌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베이스캠프의 자원봉사자 할아버지가 셰릴의 짐을 줄여주는 장면이었다. (실제로 이 할아버지는 지금도 태평양 종주를 하는 여행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여러 조언을 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단다.) 가이드북의 지나온 여정을 찢어서 태워버리고, 한번도 쓰지 않은 짐들은 미련없이 버려야 한다는 것. 외출할 때마다 늘 가방이 무거워 누군가의 어깨와 손을 의지하는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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